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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려하던 일이 결국 현실이 되었다. 코로나19라는 새로운 위험에 맞서 온 국민이 힘을 모아야 할 때인데, 이를 둘러싼 논의와 정책을 정치화시켜 버리는 일 말이다. 사태 초기부터 그들은 2008년 광우병 사태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이런저런 시그널들이 있었다. 그들 입장에서는 위험을 정치화시키는 일이야말로 최고의 선거운동이다. 총선이 두 달밖에 안 남지 않았는가. 그러나 코로나19를 광우병으로 만드는 일은 그리 쉽지 않았다. 수입 쇠고기를 먹어야 하는 계층과 한우를 먹는 계층을 뚜렷하게 갈라놓았던 광우병과 달리 호흡기 질환인 코로나19는 누구도 벗어날 수 없는 ‘민주적인’ 위험이어서 전선을 형성하기가 쉽지 않았다. 게다가 국민의 안전을 시장에 맡기려 했던 보수정부와는 달리 공공의 영역에 적극 개입하는 문재인 정부의 성향은 위험이라는 상황에서 쉽게 흔들리지 않았다. 한국 정부의 대응 능력에 대한 국제적인 평가는 매우 높았고, 초기에 비판적이었던 국민들 중 상당수도 정부의 역량을 인정하는 쪽으로 돌아섰었다. 그러던 것이 신천지 대구교회와 청도대남병원을 중심으로 한 확진자 폭증 이후 패닉 모드로 바뀌고 있다.

여러 시행착오 끝에 위험의 정치화는 하나의 논리로 모아지고 있고, 이번에는 상당히 성공적인 것으로 보인다. 그 논리는 이런 것이다. “진즉에 중국인 입국금지를 했어야 했는데, 북한이나 러시아조차도 시행하는 대책을 한국 정부는 안 하고 있다가 일을 키우는 무능을 드러냈다. 그 이유는 3월로 예정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이 취소될까봐 두렵고, 그러면 시 주석의 도움을 얻어 꽉 막힌 대북관계의 실마리를 뚫어 총선에 승리하려는 전략이 망가지기 때문이다”라는 것이다. 

나는 청와대가 당연히 이런 고려를 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 말고도 수없이 많은 다른 고려사항이 있었을 것이다. 세상 모든 일을 기-승-전-굴욕외교, 기-승-전-종북으로 몰고 가는 기적의 논리는 어이없지만, 사람들이 패닉하기 시작했고 선거가 코앞인  점을 감안하면 이번에는 먹혀들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내키지 않는 예측이지만, 정부·여당은 과학의 논리와 정치의 논리를 구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위험의 정치화라는 전략 앞에 물러설 수밖에 없더라도 몇 가지는 기록해두고 싶다. 나중에라도 돌아보고 성찰할 수 있어야 문명국가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첫째, 북한이나 러시아 등이 중국인 입국금지를 하는 이유는 그 나라들의 정부가 우리 정부보다 유능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가진 의료수준과 인프라를 고려할 때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중국인 입국금지밖에 없기 때문이다. 중국인 입국금지를 하고 있는 40여개국 중 미국, 일본 등 4~5개국만 선진국일 뿐 나머지는 북한, 러시아, 베트남, 파푸아뉴기니, 피지, 몰디브, 팔라우, 카자흐스탄, 모리셔스, 가봉 같은 나라들이다. 트럼프의 미국은 멕시코 이민자들을 강간범이라 부르며 국경장벽을 세우기도 했는데 무역전쟁 상대국인 중국을 향해 입국금지를 망설일 이유가 없다. 일본은 입국금지를 해놓고도 특유의 정보비공개 비밀주의로 인해 낭패를 보고 있다. 반면 한국처럼 아직 중국인 입국을 금지하지 않고 있는 나라는 벨기에, 영국, 캐나다, 핀란드,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네덜란드, 스페인 등이다. 앞으로 코로나19 사태가 더 심각해지면 이들도 중국인 입국금지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오늘까지 선진국의 선택이 무엇인지는 분명하다.

둘째, 지금까지 알려진 대량 확산은 중국인이 아니라 한국인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메르스 사태 때 바이러스의 대량 확산은 삼성서울병원과 평택성모병원 두 곳에서 주로 이루어졌다. 이번에는 신천지 대구교회와 청도대남병원이 그런 역할을 했다. 지금 집중해야 할 것은 신천지 대구교회 관련자들을 최대한 빨리 찾아내 지역사회로부터 격리하는 일이다. 확진자 수가 놀라운 속도로 늘어나고 있지만 신천지 관련자들을 제외하고 보면 아직까지 폭증 추세는 아니다. 이들을 찾기만 하면 아직 기회의 창은 완전히 닫히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런 시기에 위험의 정치화에 몰두하는 이들은 수천명을 모아 정치집회를 열고 한때 야당의 대선후보로 거론되던 사람은 거기에 숟가락을 얹고 있다. 정권에 대한 맹목적 증오가 생명의 가치를 넘어서고 있다.

이 대대적인 선전전에서 정부가 이기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지역사회 감염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네트워크 전파의 특성상 패닉은 늘어나고 선전은 더 잘 먹힐 것이기 때문이다. 의사결정의 환경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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