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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의원들이 27일 국회에서 의원총회를 열어 ‘선거법 반대’ 구호를 외치고 있다. 김영민 기자

마침내 선거법 개정안이 통과되었다. 여러 일들이 있었지만, 가장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의 무능, 그리고 그 무능이 어떻게 스스로와 국가의 발목을 잡고 있는가이다. 우선 가장 기초적인 사실부터 따져보자. 알다시피 정치의 영역에서 합의를 찾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선거법 개정의 필요성은 이미 오래전부터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합의를 이루고 있었던 아주 예외적인 사례이다. 이유가 있다. 첫째, 기존의 선거제도하에서는 많게는 50%에 가까운 투표가 사표가 되어 사라진다. 특정 지역에서 A 정당이 전체 투표의 51%를 얻었는데 의석은 100% 가져가는 일이 흔히 벌어졌다. 다른 정당과 정책을 원했던 49%의 뜻은 전혀 반영될 수 없는 구조였다. 이런 상황을 개선하는 것이 선거법 개정의 한 가지 중요한 이유이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으로 유권자의 뜻은 조금이나마 더 골고루 반영되게 되었다. 그러니 자유한국당이 선거법 개정으로 내 표가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 깜깜이 선거가 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새빨간 거짓 선동이다. 둘째, 소수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는다는 것은 남의 자리까지 차지한 거대 정당이 과잉대표된다는 뜻이다. 실제 이상으로 몸집을 부풀린 거대 정당들은 정권을 차지하면 독주하고, 정권을 빼앗기면 무조건 비토한다. 일이 되도록 할 수는 없지만, 되지 않도록 할 수는 있는 비토크라시(vetocracy)로 빠져드는 것이다. 비토크라시하에서는 어떤 정책도 효과를 낼 수 없다. 정권만 바뀌면 무조건 정반대로 가니까 정책의 장기적인 일관성 따위는 찾아볼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소수의 뜻이 반영되고 거대 정당이 원래 자기 몫의 몸집으로 돌아가면 절대 강자가 없으니 정당 간 협력이나 연정을 모색할 수밖에 없게 된다. 정책의 일관성을 되찾을 길이 열리는 것이다. 그러니 ‘4+1 협의체’가 민주당 2중대들과의 야합이라는 자유한국당의 주장은 생떼에 불과하다.

12월27일 본회의장에서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민주주의는 죽었다”는 손팻말을 들었다. 선거법 표결 현장에 이런 손팻말을 들고나왔다면 민주주의란 무엇이라는 그들 나름의 인식이 있고, 선거법 개정안이 그들 인식 속의 민주주의를 어떻게 훼손시킨다는 나름의 설명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심재철 원내대표의 기자간담회 내용을 봐도, 자유한국당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지난 1년간 대변인 논평들을 읽어봐도 아무 설명이 없다. 그냥 야합이고, 꼼수이고, 좌파정권 연장하려는 속셈이고…. 한마디로 응석이다. 108석을 가진 제1야당에서 다른 것도 아닌 선거법 개정에 대해 1년 넘는 기간 동안 단 한마디 설명도 내놓지 못했다는 것은 비극이다. 하긴 설명이 있으려야 있을 수가 없다. 앞에 말했듯이 기존 선거법의 문제점과 개선 방향에 대해서는 거의 완벽한 합의가 있는 영역이어서 반대 논리를 개발할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그럼 왜 반대하는 걸까. 전희경 의원의 필리버스터가 답을 준다. 자유한국당 의석수가 줄어들어서 반대하는 건 아니라며 말을 뗀 그는 잠시 후 새로운 선거법에 따르면 자유한국당이 영원한 2등, 3등 정당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며 느닷없는 고백을 내놓는다. 유권자의 뜻을 강탈하는 기존의 제도가 없다면 영원히 1등이 될 자신이 없다는 고백이기도 하다. 이에 비하면 같은 당 유민봉 의원의 필리버스터는 훨씬 들을 가치가 있었다. 행정학자 출신답게 그는 ‘제도적 정합성(institutional complementarities)’을 들고나왔다. 하나의 제도는 다른 여러 제도와 서로 엮여있는데, 이들 간의 관계를 고려하지 않고 하나만 바꾸면 전혀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이론이다. 선거법 개정의 대의와 방향성에 대해 합의가 있다 하더라도 막상 현실에 적용했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세심하게 점검하고 또 점검해야 할 일이다. 그러니 그의 문제제기는 백번 옳다. 그는 선거법과 함께 바뀌어야 할 ‘패키지 부품’ 세 가지를 들었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의원내각제 혹은 그에 준하는 대통령 권한의 분산이다. 맞는 말이지만 대통령 개헌안이 발의되었을 때 자유한국당은 무턱대고 사회주의 개헌이라며 논의하는 것조차 거부했던 것을 생각하면 만시지탄이다.

그들이 뭐라 말하든, 국회에서의 논의에 참여하는 것 자체를 거부하고 장외투쟁으로만 일관했던 자유한국당은 이번에 철저한 무능을 드러냈고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그 결과는 그들에게뿐만 아니라 국민 전체에도 재앙이다. 개정 선거법에 허점이 있을 가능성은 열려 있다. 그걸 점검하고 고치고 방향을 돌리는 게 제1야당이 했어야 할 일이다. 끝으로 비례정당에 대한 미련을 버리기를 권한다. 다른 당은 하지 않고 자유한국당만 비례정당을 창당할 경우가 그들에게는 최악이다. 혼자서만 응징의 타깃이 될 가능성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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