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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세상읽기

생존주의 대학

opinionX 2018. 11. 30. 10:39

사회학자 김홍중은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청년들이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생존주의자로 전락했다고 비판한다. 그는 생존주의의 특징을 다섯 가지로 요약한다. 첫째, 경쟁의 목적은 승리가 아니라 도태되지 않는 것이다. 둘째, 경쟁은 최종 종착지 없이 계속해서 미래로 연장된다. 셋째, 경쟁에서 생존하기 위해 모든 잠재 역량을 자본으로 전환해야 한다. 넷째, 경쟁을 통해 얻는 것은 평범한 안정이다. 다섯째, 진정성을 추구하는 것과 체제에 기능하는 것은 더 이상 대립하지 않는다.

나는 이러한 생존주의자의 모습을 청년보다는 오히려 대학에서 본다. 성공을 위해 자기경영하라는 정언명령이 온 나라를 휩쓸던 1990년대 대학은 소위 CEO 총장에 의해 하나둘씩 장악되었다. 눈에 보이는 단기성과를 내야만 하는 CEO 총장은 건물 짓기와 같은 외양 성장에 몰두했다. 대학마다 재정 확충을 위해 등록금을 마구 올렸고, 결국 역풍을 맞았다. 반값 등록금 운동과 같은 사회적 압력에 굴복해 지난 10여년간 등록금을 동결당한 것이다.

학부모의 부담을 덜어주자는 선의에서 시작된 등록금 동결은 대학을 국가에 종속시키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낳았다. 돈줄이 마른 대학은 국가가 제공하는 재정지원 사업을 따내기 위해 무한경쟁에 나섰다. 하지만 어차피 한정된 재원이라 경쟁의 승자가 따로 있을 수 없다. 작은 거라도 사업을 따내서 당장 도태되지 않는 것이 관건이다.

어쩌다 운이 좋아 사업을 따온다 해도 기뻐할 새도 없다. 단기간에 이루어지는 중간평가를 통과하지 못하면 사업을 빼앗기기 때문이다. 어차피 누군가 중도 탈락하도록 설계된 사업에서 대학들은 폭탄 돌리기 게임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

폭탄을 떠안지 않으려고 대학은 잠재역량을 온통 자본으로 바꾸는 노력을 기울인다. 우선 온갖 제재를 통해 교수에게 연구비를 따오라고 압박한다. 구조조정을 통해 인건비를 줄인다. 되도록 신임 교수를 뽑지 않는다. 직원도 비정규직으로 채운다. 학과 행정업무를 장학금 명목으로 대학원생에게 떠넘긴다.

대학에 활력을 불어넣으려고 시장 경쟁원리를 도입했다는데, 실제 결과는 참혹하다. 미래의 불확실성이 커지자 손실을 회피하여 평범한 안정을 누리고자 한다. 무엇보다 사람에 투자하지 않는다. 투자를 하면 이윤이 나와야 하는데 그 효과가 바로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장기적인 교육 투자를 하지 않고 그저 현재 이대로라도 살아남고자 한다.

마침내 대학은 사회를 비판할 수 있는 능력을 거의 상실했다. 대학의 구성원 모두 생존주의자가 되어 체제에 복무하느라 바쁘다. 학생은 스펙 쌓고 알바하느라 정신이 없다. 교수는 매년 반복되는 평가에서 도태되지 않으려고 연구, 교육, 봉사에 애를 쓴다. 이렇듯 무한경쟁에서 소수의 승자를 찬양하는 온통 긍정적인 세상에서 비판적 사유는 생존을 위협할 뿐이다.

대학이 생존주의자로 추락하는 사이 대학무용론이 온 사회로 번져나가고 있다. 학생과 학부모는 비싼 등록금 내고 대학 나와도 취업이 안된다며 볼멘소리한다. 그럴수록 국가는 취업률을 지표 삼아 구조조정하겠다며 대학을 겁박한다. 대학은 취업훈련소를 자처하지만 실상 뚜렷한 성과를 못 내고 있다. 기업이 할 일을 대학이 떠안았으니 애초부터 제대로 될 턱이 없다. 그런데도 실용적 쓸모가 없다는 질타만 쏟아진다.

그렇다고 대학 본연의 임무인 교육과 연구가 제대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교육 내용을 창출하려면 연구를 해야 하며, 연구를 하려면 대학원이 활성화되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대학원은 학위장사로 여윳돈 만드는 창구로 활용되어 왔다. 이제 늦게나마 국가가 대학원도 평가한다고 하니 부랴부랴 살길을 찾아 나서고 있다. 어차피 돈벌이도 제대로 안되는데 낮은 평가 지표를 맞아 곤란한 처지에 몰리기 전에 선제적인 구조조정에 들어간다. 강좌개설 요건을 강화해서 강좌수를 축소해 인건비를 줄이는 것이 그 예다. 묻고 싶다. 정녕, 대학을 이렇게 생존주의자로 방치해도 되는가? 도대체 ‘아직 오지 않은 세대’에 어떤 죗값을 치르려고 이러는가?

<최종렬 계명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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