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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주택은 가장 중요한 개인의 재산이라고 인식된다. 하지만 주택이 지니는 사회적 의미를 고려할 때 단순히 사적 재산의 하나로 보는 것은 너무 협소한 인식이라 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주택은 가정을 담고 있어서 그 자체로 하나의 사회를 구성하는 단위가 된다. 가정이 사회와 국가를 구성하는 최소 단위라는 것에 이견이 있을 수 없다. 이 자체만으로도 가정의 유지에 필수요소인 주택에 대한 공공의 책임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유교문화권에서는 전통적으로 가정을 중시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개념은 주택을 뜻하는 여러 단어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집을 뜻하는 가장 원시적인 단어는 우(宇)와 택(宅)이다. 이 단어들에서 면()은 지붕을 뜻하고 우(于)와 탁()은 서로 엮여있는 풀을 상형한 것이다. 그래서 일차적으로 이 단어들은 초가를 상징한다. 후대에 이르러 우는 그 음을 빌려 ‘와 하고 큰소리를 낼 정도로 큰 집’이라는 의미로 발전하여 현재와 같이 넓은 공간, 즉 우주를 뜻하는 것으로 발전하였다. 한편 택은 풀이 엮인 생김새가 사람들이 서로 의지하는 것과 같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더하여 가장 일반적으로 집을 일컫는 단어인 주택(住宅)을 이루는 문자가 되었다.

가(家)는 동아시아에서 주택을 어떤 의미로 여겼는지를 철학적으로 가장 잘 드러내는 단어이다. 단순하게 살펴보면 지붕 아래에 돼지(豕)를 기르고 있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수메르의 설형문자가 가축의 수효 등을 기록하기 위해 고안되었을 것이라고 여겨지는 것처럼 고대에 가축의 의미는 가장 중요한 자산으로써 지켜야 하는 매우 소중한 것을 뜻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즉 집은 가장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한 곳이라는 의미가 고대부터 형성되었으며 이러한 집을 잘 관리하는 것이 처신의 제일이라는 ‘수신제가(修身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라는 경구가 대학(大學)에 실리기까지 하였다.

집을 관리한다는 것(齊家)은 당연히 가정을 잘 돌보라는 의미였을 것이다. 또한 얼마 전까지 성(姓)에 가를 붙여서 강가(姜家)나 김가(金家)처럼 어떤 친족집단에 속하는지를 뜻하기도 하였으니 친족집단 전체를 잘 돌보라는 의미로 넓게 이해할 수도 있다. 춘추시대에 이르러서는 가가 유가(儒家), 도가(道家), 불가(佛家)처럼 같은 사상체계를 공유하는 집단을 지칭하기에 이르렀으니 자신의 문파나 당파를 잘 돌봐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다. 즉 고대에는 학문이나 기술에 능하게 되어 성공하기 위해서는 가정이나 속한 집단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폭넓게 자리 잡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개념은 현대에 이르러서도 어떤 일에 통달한 사람을 전문가(專門家)라고 일컫는 것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처럼 거처의 물리적 실체로서의 의미와 함께 사회적 의미와 철학적 사상까지 포괄하던 주택의 의미는 현대사회에 들어서면서 매우 축소된 것처럼 여겨진다. 도시화와 산업화가 진전되면서 사회나 공동체보다 개인의 가치에 더욱 주목하는 시대조류에 따라 집에 포함되어 있던 사회적 의미는 잊히고 시장에서 거래되는 단순한 상품처럼 여기는 경우가 많다. 현대사회에서 삶의 소외와 해체 문제가 심각한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과거에서 현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아내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굳이 과거에 집이 어떻게 인식되었는지를 살펴보는 이유이다. 파편화된 개인으로 가득 찬 사회가 직면한 문제를 풀기 위한 실마리가 집에 담긴 본래의 의미를 찾는 것에 있을지도 모른다. 현재에 맞는 공동체에 대해 고민을 하고, 그런 노력을 통해 한 가정의 힘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주거 문제를 공동체가 같이 풀어보자는 사회주택에 주목하는 사람이 많은 이유일 것이다.

집은 사고파는 물건이 아니라 사람들이 더불어 살아가는 곳이라는 의미가 널리 퍼지기를 기대한다.

<강세진 | 새로운사회를여는 연구원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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