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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bbbenji@naver.com

1998년 일본 총리가 된 오부치 게이조는 지지율이 60%를 넘을 만큼 인기를 끌었고, “10~20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한 명재상의 실적을 남겼다”는 평가까지 받았다. 그가 이렇게 할 수 있던 데는 나름의 비결이 있었다. 대학원에 다닐 때부터 정계 진출을 준비해온 그는 연설을 잘하기 위해 웅변부에, 정치인이 되면 휘호를 부탁받을 것이라며 서예부에, 난투국회에 대비해 합기도부에 들었다. 자기 지역구인 ‘군마’가 관광명소라며 관광학회에도 가입했다. 심지어 “정치인은 세계를 알아야 한다”며 25세 때 9개월간 4대륙 38개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결국 그는 26세 때 최연소 중의원이 되면서 총리를 향한 힘찬 발걸음을 내디뎠다. 한마디로 오부치는 준비된 정치인이었다.

총선이나 지방선거가 있을 때마다 우리나라의 정당들은 지명도가 있는 사람을 영입해 자기 당의 후보로 내보낸다. 그 후보의 이념이 자기 당의 지향점과 맞느냐보단 그저 인지도가 있느냐, 없느냐가 입당원서를 받는 기준이다.

 

기자회견 취소하고 돌아가고 있는 문대성 새누리당 부산 사하갑 당선자 l 출처:경향DB

정치인 중 방송에서 뉴스를 진행하던 분들이 유난히 많은 것도 그들이 정치를 잘해서라기보단 남들보다 얼굴이 팔려 표를 얻는 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MBC 앵커 출신의 엄기영은 2011년 3월 한나라당에 입당하자마자 한 달 후에 벌어질 강원지사 보궐선거의 후보가 됐다. SBS 앵커였던 정성근은 지난해 말 박원순 서울시장의 온라인 취임식을 비판한 클로징 멘트로 화제를 모았는데,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새누리당에 입당해 공천을 따냈다. 낙선하는 바람에 맹형규, 전용학, 유정현으로 이어지는 SBS 선배들의 뒤를 잇진 못했지만, 무려 42%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선전했다. 앵커를 그만둔 게 불과 총선 두 달여 전인 걸 감안하면, 왜 정당들이 앵커 영입에 열을 올리는지 이해할 수 있다.

민주통합당도 별반 다를 건 없었다. <나는 꼼수다>를 통해 인기를 얻었다는 이유로 김용민을 공천하는 바람에 국회의원 1석을 잃은 것은 물론이고 당의 지지율도 떨어뜨렸으니 말이다. 지역구는 아니지만 통합진보당은 서기호 전 판사를 비례대표 14번에 공천했는데, 여기엔 그가 총선 직전 ‘각하의 빅엿’이란 말로 현 정부를 비판해 화제가 됐던 게 크게 작용했으리라. 이런 식의 공천이 문제가 되는 건 정치 경험이 전혀 없는 사람들이 국회에 들어가 뭘 얼마나 잘할 수 있을지 의문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전에 하던 일이 정치와 전혀 연관이 없진 않겠지만, 앵커나 판사, 태권도 선수 등이 정치를 배우는 직업은 아니잖은가? 국회의원이라는 자리가 우리 국민에게 끼치는 중대한 영향을 고려한다면 한두 달 전에 입당시켜 금배지를 달게 하는 작금의 풍토에 대해 한번쯤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논문 표절이 들통나 패가망신 직전에 이른 문대성은 지명도 위주의 공천이 주는 폐해를 극명하게 드러내준다.

회충알이 사람에게 감염력을 가지려면 최소한 2주 정도는 흙속에서 발육해야 하는 것처럼, 좋은 국회의원이 되고 싶다면 선거 2년 전에는 당에 들어가 정치를 배우는 게 순리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에는 수많은 정치 지망생이 있으며, 그들도 나름대로 금배지의 꿈을 안고 지역구 관리를 하고 있으리라. 하지만 그들에게 기회를 주는 대신 돌려차기를 잘한다는 이유로 당원도 아닌 사람을 불러들여 공천을 준다면 얼마나 속상할까? 이런 식이면 굳이 정당에서 궂은일을 하기보단 외부로 나가 어떻게든 지명도를 쌓는 게 훨씬 더 나을 것이다. 정치 경험이 전무한 안철수 교수가 유력한 대권후보로 분류되는 건 그 대표적인 예다.

유권자들도 반성해야 한다. 그 사람이 어떤 비전을 가지고 있는가보단 당장의 지명도에 이끌려 투표를 한 게 그간의 행태였으니까. 직함에 현혹되지 말고 그가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를 보자.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오부치처럼 준비된 정치인이 나와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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