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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권모 | 정치·국제에디터 sulsu@kyunghyang.com
민주통합당에서 이해찬 전 총리와 박지원 의원이 만나 당 대표와 원내대표를 나눠 맡기로 정리했다고 한다. 권력을 맡을 당사자들끼리 밀실에서 짬짜미를 해놓고, 이것을 소속 국회의원과 국민들이 아름다운 단합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친노와 호남의 결합, 대선 승리를 위한 역할 분담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착각이다. 그들이 내세우는 결합과 대선 승리는 이런 식의 끼리끼리 담합으로 담보되지 않는다. 왜? 이들의 역할 분담은 가치도, 명분도, 감동도 없기 때문이다. 대선 승리를 위한 선택이라고 내세웠지만, 외려 대선을 포기한 것으로 간다는 점에서 전략적이지도 않다.
이해찬 전 총리와 박지원 최고위원 l 출처:경향DB
첫째, 가치도 없고 명분도 없다. 친노 대 비노, 호남 대 비호남의 구도를 언제까지 지속할 것인가라는 반성 아래서 이런 역할 분담을 도모했다지만, 가치가 반영되지 않는 단합은 권력나누기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친노는 이해찬 전 총리가, 호남은 박지원 의원이 대표하기 때문에 당권을 분담해서 맡겠다는 것은 오만이 아니면 내세우기 힘들다. 바른 연대는 가치를 갖고 이뤄지는 것이지 자기들이 구획한 지역과 세력의 인위적 결합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경선을 하기도 전에 자기들끼리 원내대표와 당 대표로 결론을 내고, 국회의원과 당원들에게 이를 수용하라고 내놓는 것에서는 오만을 넘어 독재적 발상까지 묻어난다. 그래 놓고 박근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의 독재, 사당화 문제를 비판할 터인가.
이러한 단합 논리는 총선 패배의 원인을 호도하는 것이기도 하다. 총선에서 패배한 것은 이들의 인물, 세력 결합이 이뤄지지 않아서가 아니다. 쇄신에서도, 공천에서도, 정책에서도 새누리당을 능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대선 승리를 위해서라는 것은 담합을 포장하는 허울의 명분이고, 내심에 흐르는 것은 최대 계파 수장들의 권력 지키기일 뿐이다.
둘째, 설령 단합을 위해서라는 선의를 인정한다손 치더라도 두 사람의 역할 분담은 감동이 없다. 지난 시대의 인물, 노회한 정객이 등장하는 흘러간 드라마에 감동이 있을 리 없다. 자칭 정치9단끼리의 결합은 18단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해묵은 정치를 환기시키고, 민주당을 18년 전쯤으로 되돌리는 것으로 보이게 한다.
새누리당 박근혜 비대위원장은 감히 미래를 얘기하는데, 대안 야당의 얼굴은 구태의연함을 보여주려 한다. 박근혜 비대위원장의 미래를 돋보이게 하는 거울효과로 이만한 인물 조합도 없다. 총선에서 무감동 공천을 보여주더니 이번에는 작정하고 감동 없는 경선, 무감동의 지도부를 만들어 보일 판이다.
셋째, 전략적이지도 않다. 대선 승리를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하지만, 대선 승리를 위해 가장 전략적이지 않은 결합이다. 박근혜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대선 승리를 꿈꾼다면 야당이 맨 먼저 갖춰야 할 것이 경쟁의 과정, 역동성이다. ‘친노’의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2년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민주당 경선에서 보여준 경쟁, 역동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데 이번 결합은 그러한 건강한 경쟁의 싹 자체를 스스로 자르고, 당의 역동성을 없애 버리려는 것이다. 대권 7부 능선쯤 가 있는 박근혜 대세론에 맞서려면 그 경쟁을 부추겨 쇼라도 꾸며야 할 판에 민주당 대통령 후보는 친노 사람으로 자기들끼리 결정했다고 공고하고 나선 꼴이기 때문이다.
그랬으니 이 결합이 염두에 둔 대통령 후보일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담합이 아닌 단합으로 바람직한 모습”이라고 옹호하고 나섰을 것이다. 게다가 이들은 인위적 권력나누기의 정당성을 내세우기 위해 재야 원로들의 원탁회의까지 이용함으로써, 대선 국면에서 역할이 필요한 원탁회의의 권위와 정당성조차 훼손했다. 그래서 새누리당과 무슨 일을 도모했다면 담합이지만 정권교체를 위해 뭉친 것이기 때문에 좋은 일이라는, 박지원 의원의 주장은 허술할 수밖에 없다. 외려 이번 담합은 정권교체 자체를 포기하는 길일 수 있다.
이러함에도 정치9단이라는 이들이 무리수를 두면서 권력 짬짜미를 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 궁금하다. 헌법기관인 소속 국회의원들은 버튼만 누르면 작동하는 로봇쯤으로 간주하고, 국민들은 안중에도 두지 않기 때문일까. 도저히 질 수 없는 총선에서 127석의 제2당이 된 결과를 두고 괜찮은 성적이라고 의미를 부여한 데서 이미 예고된 권력의 오만이 발동된 것일까. 아니면 대선에서 패할 것을 예상하고 제1야당의 당권이라도 잡겠다는 생각일까.
이제 ‘원내대표 박지원-당 대표 이해찬’의 담합대로 원내대표와 대표 경선의 결과가 나오면 민주당은 식물정당을 자초하는 것이 된다. 밀실 야합의 각본대로 되면 민주당은 죽은 정당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대선 경쟁도 일찌감치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진정 정권교체, 대선 승리를 위해서라면 우선 민주당의 경선에서 이 담합의 각본을 깨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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