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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정보원이 이탈리아에서 해킹장비를 샀다. 장비를 판 회사 직원의 말에 따르면 국정원은 자신들에게 “카카오톡 감청 기능을 추가해달라”고 부탁했다. 게다가 국정원은 지난 대선 때 야당 후보를 비방하는 댓글을 다는 등 정치공작을 벌였던 전력이 있다. 사정이 이러니 여론조사 결과 “내국인 사찰도 했을 것”이라고 믿는 이가 52.9% 나온 것은 당연했다.
그런데 국정원 주장대로 “대테러나 대북공작 활동을 위해서만 해킹했을 것”이라고 응답한 분들도 26.9%나 됐다. 이분들은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그 중 일부는 세상은 추호의 거짓도 없는 아름다운 곳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일 것이다.
그래서 이분들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기밀문서를 줄줄 외우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일부일 뿐, 26.9%의 대부분은 자신의 소신보단 “내가 어떻게 답하면 박근혜 대통령에게 유리할까”를 생각하는 분들이다. 세상에선 이런 분들을 ‘박빠’라고 부른다. 메르스 사태 등 갖은 악재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가 30% 이하로 내려가지 않는 것도 다 이분들 때문인데, 박빠들에게는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
첫째, 박 대통령을 가련하게 여긴다.
“가련한 대통령 좀 그만 흔들어라, 멍청한 남정네들아.” 박빠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문자의 첫 구절이다. 처음 이 구절을 봤을 때 난 여기서 지칭하는 대통령이 박 대통령은 아닌 줄 알았다. 행정부의 수반이며, 입법과 사법을 우습게 여기는 절대자를 ‘가련’하다고 표현할 사람은 최소한 우리나라에는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다음을 보라. “박 대통령, 잘하고 있습니다. 마음으로라도 응원을 보냅시다.” 아이돌 그룹의 빠들이 자신들이 추종하는 연예인을 위대하다며 치켜세우는 것을 떠올려보면, 절대자를 가련한 존재로 승화시키는 박빠들은 확실히 특이한 존재다.
둘째, 노무현 전 대통령을 무소불위의 존재로 치켜세운다.
“참 나쁜 대통령이다.” 노 전 대통령의 재임 시절 박 대통령이 한 말인데, 여기서 보듯 박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을 싫어했다. 사정이 이렇다면 박빠들은 노 전 대통령을 깎아내려야 마땅하다. A가수의 팬이라면 라이벌인 B가수가 A가수보다 노래를 못한다고 하는 게 일반적인 경향이니까. 그런데 박빠들은 그 반대여서, 노 전 대통령의 능력을 과대평가한다. 뭔가가 잘 안되면 죄다 노무현 탓으로 몰아붙인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살아 계시다면 얘기가 다르지만, 돌아가신 지 6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그러고 있으니 정말 신기한 일이다. 일례로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유력 정치인들에게 돈을 준, 소위 성완종 리스트가 문제가 됐을 때 박빠들의 논리는 “노무현이 대통령 재임 시절 성완종을 사면해서 박 대통령을 곤경에 빠뜨리고 있다”였다. 정치적 라이벌을 과대평가하는 빠라니, 정말 특이하지 않은가.
셋째, 계산에 약하다.
무상급식 얘기가 나올 때마다 박빠들은 ‘나라가 거덜난다’며 입에 거품을 물었다. 그 충정은 십분 이해하지만, 그토록 나라의 재정을 걱정한다면 박빠들이 먼저 대통령에게 기업의 법인세를 올리자고 얘기해야 맞다. 이명박 정부 때 시작된 감세정책은 5년간 100조원에 가까운 재정적자를 냈고, 그 기조를 그대로 유지한 현 정부에서는 135조원의 적자가 날 것으로 예상된다. 무상급식 비용은 여기에 비하면 새 발의 피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은 법인세의 원상회복에 반대한다. 신기하게도 박빠들은 여기에 침묵으로 일관한다. 왜 그럴까? 나라를 걱정하는 그들의 충정이 거짓일 리는 없으니, 아마도 숫자 감각이 없는 게 그 이유이리라. 학생들에게 경고한다. 수학을 못하면 박빠가 될 확률이 높다.
박빠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또 다른 문자는 박 대통령의 업적을 나열하고 있다. 그런데 그들이 꼽는 첫 번째 업적은 “노무현의 한·미연합사 전작권 환수 무기 연기”였다. 모든 나라는 평화 시는 물론이고 전시에 독자적으로 작전을 수행할 권리를 갖는다. 어쩔 수 없이 미국에 양도하긴 했지만, 전작권은 우리가 주권국가로서 반드시 돌려받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전작권 환수를 무기 연기한 게 박 대통령의 첫 번째 업적이라니 그저 놀라울 뿐이다. 혹시 그들은 전작권의 개념을 잘 모르는 게 아닐까? 참고로 두 번째 업적은 전교조의 법외노조 통보인데, 아무리 내세울 업적이 없어도 그렇지, 이런 것들을 업적이라고 문자로 돌리고 있다는 게 참 안돼 보인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지지했던 노사모는 대통령의 이라크 파병을 반대했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도 반대하는 등 비판할 점은 비판하곤 했다. 하지만 박빠는 대통령의 뜻이라면 무조건 추종한다. 지금 박 대통령이 나라를 산으로 끌고 가시는 건 물론 본인의 능력 탓이지만, 박빠의 무조건적인 지지도 여기에 한몫을 한다. 박빠가 위험한 이유다.
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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