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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대통령과 그 지지자들은 정치를 싸움으로 본다. 선한 자신들은 소수인 데 비해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보수언론,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검찰, 악 그 자체인 미래통합당 등등, 자신들을 둘러싼 환경은 극도로 좋지 않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거악들을 물리치고 승리를 쟁취하는 게 자신들에게 주어진 소명. 그래서 그들은 모든 사안을 내 편과 네 편 간 치열한 전투로 승화시킨다. 전투에서 이기기 위해선 약한 모습을 보이는 건 금기 사항. 현 정부가 유난히 사과에 인색한 것도 이런 측면에서 보면 이해가 간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경우 광우병 시위 때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세월호 사건이 났을 때 억지로 눈물을 짜내면서까지 사과했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마스크 관련 사과를 제외하면, 국민에게 사과한 기억이 거의 없다. 국민을 분열시키고 진보의 몰락을 가져온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임명에 대해 사과는커녕 “마음의 빚” 운운하며 오히려 상처를 키웠고,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든 선거개입 사건에 대해선 아예 언급 자체를 안 하는 중이다. 사실 여부를 떠나 전·현직 청와대 비서관들이 무더기로 기소됐다면, 그것만으로도 사과하는 게 마땅하지 않은가? 

문제는 대통령이 코로나19가 번진 현 상황에서도 비슷한 태도를 보인다는 점이다. 감염학회와 의사협회가 중국인 입국금지를 정부에 요청한 것은 한 달도 더 됐지만, 정부는 여기에 관한 논의를 거부했다. 의사협회는 박사모였던 최대집이 이끄는 조직, 그들이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은 경제를 망가뜨리고 시진핑 방한을 무산시킴으로써 민주당이 총선에서 승리하는 것을 막기 위함이니까. 정부는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채 칭찬에만 매달렸다. 칭찬을 통한 사기진작은 전쟁에서 중요한 요소. 지난달 5일 성동구청을 방문했을 때 대통령이 박원순 시장에게 “메르스 때에 비하면 어떤가?”라고 물은 게 그 대표적인 예다. 최악의 대처로 기억되는 메르스를 굳이 비교의 대상으로 삼은 걸 보면, 대통령은 코로나19를 통해 박 전 대통령을 이겨먹고 싶었던 모양이다. 박 시장은 “훨씬 더 잘하고 있다”고 대답한다. 기분이 좋아진 대통령은 2월13일 “코로나19는 머지않아 종식될 것입니다”라는 발언을 하는데, 이는 국가 지도자가 섣불리 장담하면 안된다는 반면교사로 두고두고 회자할 말이 됐다.

3월3일 현재 우리나라는 5000명에 육박하는 확진자를 거느린 세계 2위의 코로나19 감염 대국이며, 현재 81개국이 한국인 입국을 금지하거나 입국절차를 강화한 상태다. 이쯤 되면 대통령이 사과할 만도 하지만, 현 정부는 그러는 대신 신천지에 모든 책임을 돌리고 있다. 심지어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중국인이 아닌, 중국에서 온 한국인이 바이러스를 전파했다며 언성을 높였다. 한국에 온 중국인 중 확진자가 나오지 않았다는 게 그 말의 근거지만, 다음 통계는 박 장관의 말을 배척한다. “2월12일부터 23일까지만 따져봐도 이 기간에 입국한 중국인 5만9000여명 가운데 87명만 검사를 받았습니다.” 한국에 온 중국인이 쉽사리 병원에 가기 어렵다는 현실을 고려하면, 이들 중 누군가가 바이러스를 퍼뜨리지 않았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신천지의 폐쇄적 태도는 분명 문제지만, 천안 댄스교습소에서 다량의 감염자가 나온 데서 보듯 바이러스가 존재한다면 규모는 다를지언정 신천지와 비슷한 일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대통령 극성 지지자들에게도 문제는 있다. 초창기만 해도 그들은 일본보다 우리나라가 환자 수가 적다면서 대통령을 찬양했다. 그들 논리대로라면 환자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지금은 대통령을 욕해야 마땅하지만, 지금 그들은 “우리나라가 검사를 많이 해서 확진자가 많은 것”이라며 여전히 대통령을 칭송한다. 이유가 어떻든 확진자가 많은 게 자랑은 아닐 텐데 말이다. 최근에는 우리나라의 사망률이 중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보다 낮다면서 정부를 칭찬하는 글까지 올라왔다. 코로나19 사태가 아직 다 끝나지도 않았는데 이런 통계를 내는 게 의미가 있을까 싶지만, 어떻게든 칭찬할 이유를 만들려는 그들의 노력은 정말이지 눈물겹다. 그래서 말씀드린다. 대통령님, 제발 코로나와 싸우는 데 전념해 주십시오. 박근혜보다 낫다는 칭찬은 지금 열성 지지지들한테가 아니라, 사태가 수습된 뒤 더 많은 국민한테 들어도 충분합니다.

<서민 단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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