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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다섯 마리를 키운다. 미모가 출중한 데다 애교도 많은 애들이라, 집에 갈 때마다 가슴이 설렌다. 밖에 개들을 데리고 나가면 다들 개가 예쁘다고 찬사가 이어진다. 아내와 난 이 개들의 행복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 개들을 혼자 놔두는 게 싫어서 해외여행은 물론이고 국내여행도 가지 않는다. 내가 먹고픈 게 있어도 개들이 먹겠다면 기꺼이 양보할 정도다. 하지만 우린 알고 있다. 우리가 없다면, 이 개들의 운명은 하루아침에 밑바닥으로 떨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개를 기르는 데는 돈과 노력이 필요하다. 먹는 것을 주는 일은 물론이고 매일 한두 번씩 놀아줘야 하며, 가끔 미용도 시켜줘야 미모가 유지된다. 정말 돈이 드는 항목은 진료비다. 개는 의료보험이 없는지라 진료비가 사람보다 훨씬 비싸다. 지금은 저세상으로 갔지만 전에 기르던 개는 심장이 좋지 않아 인공심박기를 달아야 했는데, 결혼 후 경제적으로 가장 어려웠던 때가 바로 그 시기였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개를 기르는 사람은 많다. 애견인 천만시대라고 하니, 다섯명 중 한명은 개와 더불어 사는 셈이다. 그런데 이들 중 개를 위해 기본적인 의무를 다하지 않는 사람이 굉장히 많다. 개가 아파도 병원에 데려가지 않아 병을 키우고, 행여 데려가도 치료비가 비싸다며 그냥 나오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급기야 이들은 개를 버린다. 나이가 들었다고, 아프다고, 이사를 간다고, 출산 때문에 등등 나름의 이유는 있지만, 그 이유가 무엇이든 버려지는 개들의 운명은 똑같이 비극적이다. 먹을 것을 구하려고 쓰레기통을 뒤져야 하고, 길을 건너다 차에 치이거나 보호소로 끌려갔다 안락사를 당하는 게 유기견의 말로다. 누군가에게 입양돼 제대로 된 관리를 받는다면 애교 많은 개로 돌아갈 수 있지만, 버려진 개가 다시 입양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이렇게 버려지는 개는 한 해에 10만마리에 달하고, 이들을 위한 보호소 운영과 안락사에 들어가는 돈은 천문학적이다. 버려지는 개는 자신에게도 불행이지만, 국민건강 차원에서도 해를 끼친다. 집에서 사료를 먹는 개와 달리 유기견은 이것저것 주워 먹다가 개회충에 걸리고, 개회충의 알을 곳곳에 뿌린다. 그 알이 사람에게 들어와 눈이나 간, 뇌 등에 염증을 일으킬 수 있는데, 우리나라가 세계적인 개회충 강국인 이유도 거리 곳곳에 유기견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과 동시에 ‘토리’라는 유기견을 입양했다. 토리는 유기견으로, 식용으로 도살되기 전 극적으로 구조된, 기구한 사연을 갖고 있다. 그 뒤 2년간 토리는 새 주인을 찾지 못했지만, 문 대통령 덕분에 퍼스트 도그가 되는 견생역전을 이룬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이미지 관리 차원에서 개를 입양했다 내팽개친 반면, 문 대통령은 원래 반려동물에 조예가 깊은 분이었다. 어려운 처지에 놓인 유기견을 입양한 것만 봐도 대통령의 품성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문 대통령은 대통령이 될 때 반려동물에 대한 공약을 발표하며 유기견에 대한 항목을 포함시켰다. ‘유기동물 재입양 활성화’가 바로 그것인데, 안타깝게도 문 대통령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유기견 문화는 별로 바뀌지 않았다. 2017년만 봐도 유기견에 대한 기사가 차고 넘친다. 개가 아프다는 이유로 쓰레기봉투에 버린 사람도 있었고, 휴가철은 대놓고 개를 버리는 시기다. 유기동물을 입양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관리를 안해 더러워진 외모도 입양을 꺼리는 이유지만, 한번 버려져 상처받은 개를 다독이려면 새끼 때 입양하는 것보다 몇 배의 노력이 필요하다. 이전 정부의 정책이 실패한 것도 유기견의 급증에 한몫했다. 2015년부터 반려동물 등록제가 시행돼 이를 위반하면 40만원의 과태료를 내게 했고, 버려진 동물의 주인을 알 수 있게 내장용 칩을 심는 것을 의무화했지만, 단속 건수가 0에 수렴하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이런 정책들은 전혀 효과를 내지 못했다. 개를 버리겠다는 의지가 투철한데 칩이 무슨 대수겠는가? 유기견 입양을 권하는 것보다 유기견이 발생하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게 훨씬 더 중요하다는 얘기다. 병에 걸린 후 치료하는 것보다 걸리지 않도록 예방하는 게 훨씬 노력이 덜 드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래서 말씀드린다. 지금처럼 누구나 개를 기르는 대신, 개 기를 자격을 보다 엄격히 하자. 개와 남은 평생을 같이하고, 개가 아플 때나 나이가 들었을 때도 돌봄을 계속할 수 있는 사람만이 개를 기르게 하자. 그러자면 제대로 된 애완동물 등록제가 필요하다. 예컨대 개를 기르려는 사람에게 50만원 정도의 등록비를 국가에서 받고, 그 개를 국가가 관리하게 한다면 어떨까? 개를 기르기 어려워야 개의 소중함을 알고, 그 정도 돈을 지불할 수 있어야 개에 대한 제대로 된 돌봄을 하지 않겠는가? 유기동물의 경우엔 등록비를 싸게 한다면 유기동물 재입양 활성화도 가능할 것이다. 또한 소위 강아지 공장에서 개를 마구잡이로 ‘찍어내는’ 것도 규제할 필요가 있다. 현재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와 있는 ‘펫숍 분양을 금지시켜 달라’는 청원도 이런 맥락이다. 찾아보면 방법이 없진 않을 터, 2018년은 반려동물들이 눈물을 덜 흘리는 해로 만들어 주시길 빈다.

<서민 단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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