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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에 일본 증권가를 덮친 폭락 사태는 그 후 20년간 넘게 진행된 일본 경제의 장기 불황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그렇지만 그 후에도 일본 부동산은 계속해서 올랐고, 1년 후 여름에 종점을 찍었다.
증권과 부동산은 가끔은 경쟁 관계이다. 한쪽이 망하면 다른 쪽이 흥한다. 그렇지만 크게 보면 결국은 다 망한다. 실물경제와 국민소득이 뒷받침되지 않는데, 증권이든 부동산이든, 혼자서만 잘되는 일은 없다.
지금 한국은 다른 건 다 어렵고, 부동산만 괜찮다. 부동산 중에서도 강남 등 특정 지역의 재건축과 분양권 전매라고 부르는, 분양을 받아놓고 권리만 파는 일이 아주 잘된다. 분양권 전매는 계약금을 낮춰서 계약하는 다운계약서와 함께 일반인 부동산 불법의 양대 축이다.
분양권 전매는 한국에서만 벌어지는 일이다. 우리의 분양제도가 좀 이상해서 그렇다.
개인이 집을 지을 때를 생각해 보자. 땅을 먼저 산다. 그리고 여기에 집을 짓는다. 기업이 지을 때에는? 마찬가지다. 땅을 사고, 집을 짓는다. 그리고 그걸 개인들에게 판다. 이걸 분양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그렇게 안 한다. 기업이 땅을 사고, 집을 팔고, 그리고 천천히 집을 짓는다. 개인은 집을 보지도 못하고 먼저 사야 한다. 그 과정에서 1순위, 2순위, 분양가, 분양가 상한제, 프리미엄, 온갖 용어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이런 이상한 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이유는 단 하나, 기업이 집을 지을 때 초기에 부담하는 금융 비용을 줄여주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부담은 고스란히 개인에게 넘어간다.
그 과정에서 운 좋은 사람들은 분양가와 시세의 차이로 프리미엄을 챙긴다. 확률의 문제이다.
참여정부 말기에 집값이 폭등하면서 선분양제 폐지에 대한 논쟁이 한 번 있었다. 모두가 필요성은 인정했다. 하지만 건설업체에 대한 부담이 너무 한 번에 급증한다는 이유로 현실로 옮기지는 못했다. 그 와중에 집단대출이라고 하는, 역시 개인이 부담해야 하는 금융을 편법으로 대출해주는 부작용이 생겨났다. 후분양이 정상적인 분양제도가 되면 발생하지 않았을 일이다. 집단대출이 지금 가계부채의 핵심 뇌관이다.
지금은 기준금리가 사상 최저로 내려간 상태이다. 분양권 전매와 집단대출 등 선분양제 때문에 생겨난 부작용이 경제에 문제를 일으키는 것도 사실이다. 신축이든 재건축이든, 집을 짓는 사람이 당연히 져야 하는 금융 부담을 집을 사는 사람에게 부당하게 전가하는 것은 이제 그만해도 되지 않을까? 주택보급률 100%가 넘어간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절대 주택이 부족하던 시절의 제도를 일부 건설사를 위해서 계속 끌고 가는 것은 OECD 국가답지 않은 일이다.
집을 짓고, 좋은 층이나 전망 좋은 곳은 더 비싸게 팔면 된다. 소비자들은 더 비싸게 주든지, 아니면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사든지, 선택하면 된다. 부실시공이니, 사기분양이니, 이 온갖 전문 용어들이 집은 보지도 않고 돈부터 내게 하는 선분양제에서 나온 얘기들이다. 이자율은 사상 최저이고, 프리미엄을 둘러싼 분양권 전매가 극성인 지금, 선분양제 폐지를 고민할 적기이다. 지금 제도 개선을 하지 않으면, 증권이나 은행에서 빠져나온 돈이 전매 등 부동산 투기로 들어간다.
증시와 은행은 최악의 상황인데 부동산 혼자서 최고의 호황을 누리는 위험이 눈앞에 있다. 부동산만 너무 이렇게 손쉽게 돈 벌게 풀어놓으면 실물경제 등 다른 분야로 돈이 전혀 안 간다. 지금이 제도 개선의 적기이자, 꼭 해야 하는 시기이다. 언제까지 우리만 선분양제를 끌고 갈 수는 없다. 다른 경기는 다 안 좋은데, 좋은 지역에 부동산 전매만 하면 돈이 벌린다는 거, 이게 말이 되느냐?
우석훈 | 타이거 픽쳐스 자문·경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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