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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호한하다’라는 말 들어본 사람 있을까? ‘호연’이나 ‘호연지기(浩然之氣)’도 만나본 지 오래다. ‘호방(豪放)하다’나 ‘호쾌(豪快)하다’라는 단어도 스러져가는가? 애국가 3절 ‘가을 하늘 공활한데 높고 구름 없이…’의 ‘공활(空豁)’은 뭐지? 마음 씀씀이가 꾀죄죄하지 않고 탁 트인, 이효리씨 느낌 같은, 그런 사람 보면 기분 좋다. 인증도 없이 ‘유기농 콩’ 키워 팔았다고 입질 오르더니 TV에서 쑥스러워하던, 털털한 모습이 되레 멋졌다. ‘참 호한하다!’고 생각했다. 생김새도 그렇지만, 몸가짐과 말씨가 도리에 맞으면서도 거침없는 그런 사람 여럿 있으리라.

그러나, ‘전투태세 완비!’를 다짐하는 듯한 투사형(型)들로 거리는 복작댄다. 살벌한 칼춤과 총질이 남의 나라 얘기만은 아니었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홉스의 <리바이어던>)의 도시 풍경인가? 허용오차 제로(0)의 인간시장, 너나없이 어느덧 익숙해져 한숨도 이젠 새삼스럽지. 위에 띄워둔 말들 말고, ‘마음 씀씀이 꾀죄죄하지 않고 탁 트인’ 그런 모양을 뭐라고 하는지 궁리해봤다. ‘마음 넓고 통이 큰’ ‘막히지 않은’ 등을 적고는 그만 글줄이 막혔다.

이런 뜬금없는 생각은 왜 했지? 네이버 ‘열린 연단’에서 고려대 심경호 교수(한문학)가 ‘한국의 고전, 그 역사적 특성과 새로운 생성’이라는 제목의 강연을 했다. 이어 토론자 조세형 교수(서울시립대 국문과)가 이렇게 말을 시작했다. “… (심 교수님은) 호한한 학문세계를 갖고 계시기 때문에….” 자막에는 그때 이런 문장이 떴다. “… 후황한 학문세계를 갖고 계시기 때문에….”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출처 : 경향DB)


호한(浩瀚)은 ‘호한하다’처럼 쓰여 넓고 평평하고 크고 많음을 나타내는 말이다. 곧잘 쓰던 단어였는데, 요즘 만나본 기억이 거의 없다. 이 해프닝은 실무선에서 생긴 문제겠다. 기계가 듣고 자동으로 적었을까? 그래도 사람이 글을 점검하는 최종 문책(文責) 과정은 있었을 터다.

인터넷에 오른 지 달포 가까이 되도록 그대로다. 뭐가 어떻게 틀렸는지 아무도 알아채지 못한 상황 같다. ‘사소한 문제’여서 점잖은 체면에 따따부따 나서지들 않아서였겠지.

‘호한’을 몰랐을 수 있다. 그래서 (실무자) 자신이 들은 것으로 여겨지는 ‘후황’을 썼으리라. 이럴 땐 발언자에게 묻거나, 최소한 사전을 찾았어야 한다. 후황(厚況)이란 말이 없는 것은 아니나 이는 ‘봉급이 많다’는 뜻, 간단한 검토로 틀리지 않을 수 있었다. 혹은 비슷한 발음 ‘허황(虛荒)하다’와 머릿속에서 엉켰을까?

그만 매조지하자. 어휘(語彙)는 사람에 따라 크고 작은 것과 같은 차이가 있다. 많이 알면 좋다. 그러나 이는 각자의 선택이다. 정작 문제의 본질은 모국어에 대한 예의와 자세다. 오인(誤認)에 의한 오기(誤記)는 오타(誤打)와 같은 수준의 실수가 아니다.

또 하나 주목할 지점. ‘탁 트여 너르고 크다’는, 마음의 여유를 이르는 말 호한·호연·호방·호쾌·공활 등이 단체로 실종되고 있는 오늘의 (언어) 상황과 점차 냉랭하고 살벌해지는 세상의 풍속(風俗) 사이에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 또는 ‘정치’와는? 가멸던 한국어가 이리 가물어지는 원인도 궁리해야 한다.

말도, 보이지 않으면 그 뜻이 마음에서 멀어지는가?


강상헌 | 언론인·우리글진흥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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