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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피해 가족은 물론, 국민 모두가 분노와 절실함을 담아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과 ‘진실’을 요구하고 있다. 이미 ‘살인죄’로 기소된 선장과 선원들, 그리고 도주극을 벌이고 있는 유병언의 구체적인 범죄 행위는 물론, ‘적폐’로 불리는 정·관·산 부패 연결 고리의 실체, 그리고 법과 제도, 관행과 문화의 문제를 규명해 내라는 것이 상처 입은 사람들 모두의 정당한 요구다. 이미 정부, 여야 정당들과 사회 각계각층은 ‘진실 규명’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합의했다. 검찰의 수사에 이은 재판과 국회 국정조사는 그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구체적인 실천방안으로 들어가면 기대보다는 걱정이 앞서는 게 사실이다. 검찰 수사는 이미 여러 차례 ‘권력지향성’에 대한 비판과 의문의 대상이 되면서 ‘성역 보호’와 ‘제 식구 감싸기’, ‘꼬리 자르기’ 의혹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법원 역시 검찰이 제출한 공소장의 한계와 범위를 넘어서는 진실 발견은 아예 자신들의 역할로 인지하지 않고 있다. 국회 또한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 국정조사’에서 보인 어처구니없는 모습으로 ‘진상규명 의지와 능력’에 대한 신뢰를 잃은 상태다. 권력다툼과 정쟁이 습관화된 대한민국 정치권에 객관과 진실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무리인지도 모른다. 이대로라면 ‘진상규명’이 아니라 ‘의혹과 정쟁, 분열의 확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다. 여론을 의식한 정부와 국회에서는 ‘민관합동 진상조사단’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절대로 안될 일이다. 이미 천안함 사건에서 경험한 ‘철저한 실패작’이다. 이런저런 대표자들과 자천타천 전문가들이 모이는 무질서하고 무책임한 모임에서 의미와 진위가 확인되지 않은 수많은 증거와 자료를 열람할 경우, 각자의 목적과 의도 혹은 선입견에 맞는 것만 발췌해 주장하고 이용하는 ‘대혼란’만 초래될 뿐이다.
세월호 승무원 15명 법정에 (출처 :경향DB)
그럼 대안이 무엇일까? 이미 많은 나라에서 실효성이 검증된 ‘독립 조사위원회’ 방식이 답이다. 영연방 국가들이 공통적으로 운영하는 ‘왕립조사위원회’나 미국의 사안별 독립위원회가 대표적이다. 모두 대법관 출신 등 정치권과 사회 및 학계의 신뢰를 받는 원로 법조인을 위원장으로 임명해 자신의 이름과 명예를 걸고 진실을 밝히도록 한다. 1년 이상의 장기간 조사를 진행하며 특별법을 제정해 검찰이나 국세청 등 모든 기관의 권한을 포괄한 강한 힘을 부여한다. 인력과 예산 역시 충분히 지원된다. 런던과 뉴욕을 충격에 빠뜨린 총체적인 경찰부패 문제나 안보와 인권 사이 갈등과 국론 분열의 위험을 내포하고 있던 중앙정보국(CIA)의 불법 문제를 해결하고 국가 수준을 업그레이드한 주역들이다. 우리나라 역시 ‘과거사 진상규명위원회’와 ‘군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를 통해 묻혀있던 진실을 드러내고 피해자들의 한을 풀어 준 사례가 있다.
하지만 천안함 사건 등 의혹과 갈등의 대상이 된 대형 사건의 진실이 속 시원하게 밝혀진 사례를 찾기 어렵다. 과거와 현재의 권력, 혹은 관련 당사자들의 이해와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운, 그래서 그 조사 결과에 대해 광범위한 신뢰를 확보할 수 있는 독립된 전문 조사기구의 부재 탓이다. 속칭 ‘김영란 법’으로 알려진 고위공직자 부패방지법을 제안한 김영란 전 대법관은 부패방지를 총괄하는 국민권익위원장을 역임했고 노무현, 이명박 두 정권에서 공히 인정과 신임을 받았으며, 현 정부의 총리 후보로 거명된 사람이다. 정파를 초월한 지지와 피해자 가족을 포함한 국민 다수의 신뢰를 받을 수 있으며, 수사와 조사의 전문성까지 갖춘 거의 유일한 사람이다. 김영란 전 대법관이 주도하고 책임지는 ‘독립 조사위원회’라면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밝혀 피해자와 가족들의 원과 한을 풀어 주고, 확고한 재발방지 개혁 방안을 내놓을 수 있을 것이다. 독립된 ‘김영란 조사위원회’ 설치를 촉구한다.
표창원 | 범죄과학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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