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대구 황산테러 사건’의 공소시효가 만료 3일 전에 극적으로 중단됐다. 피해자 태완군(사고 당시 6세) 부모가 용의자로 지목해 고소한 이웃주민에 대해 검찰이 증거불충분으로 ‘불기소처분’을 내리자 다시 법원에 ‘재정신청’을 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3개월 동안 법원이 이 사건에 대해 공소제기 결정을 내릴지 살펴보게 되고 경찰은 마지막 수사활동을 통해 증거확보를 시도하게 된다. 하지만 피해자 태완군이 병상에서 남긴 육성 진술 외에는 증거가 없다. 사건 초기에 현장과 용의자 거주지 등에서 확보한 ‘물증’이 남겨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는 15년 전 대구에서 발생한 의문의 여대생 사망사건의 공소시효가 지난 뒤 스리랑카인에 대한 기소가 이뤄져 논란이 일기도 했다. 화성연쇄살인사건, 이형호군 유괴살인사건 등 수많은 강력사건이 공소시효의 벽 앞에서 산산이 부서져 영구미제의 늪으로 사라져갔다. 반면 지난 5월5일 미국 워체스터 카운티 검찰이 40년 전에 발생한 성폭행 살인사건의 용의자 론조 구스리 주니어를 체포해 기소하는 등 영국과 미국 등에선 심심찮게 30~40년 전 살인사건 해결 소식이 들려온다. 국가가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국민의 생명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느냐를 극명하게 대비해 보여주는 사례다.

공소시효는 비단 ‘시간’의 문제만은 아니다. 공소시효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수사의지를 약화시키고 증거보관 체제의 미비를 초래한다. 사건해결이 가장 용이한 발생 초기에 용의자 특정과 증거확보가 안될 경우, ‘미제 사건’으로 분류돼 우선순위에서 밀리게 되고, 시간이 지날수록 ‘어차피 공소시효 지나면 수사할 수 없는 사건’이라는 낙인이 찍히면서 서류창고의 먼지 속으로 들어가버리게 된다. 1970~1980년대에 발생한 사건의 상당수는 현장에 범인의 체액이나 모발 등이 남겨져 있었다. 하지만 당시는 DNA 신원확인 기법이 등장하기 전이었기에 그것만으로는 범인을 알 수 없었다. 만약 그 증거가 냉장 보관돼 있었다면 1980년대 후반 이후 널리 보급된 DNA기법을 통해 범인을 검거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공소시효’ 때문에 시간이 흐르면 폐기될 사건들의 증거를 장기간 보관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 수사당국은 ‘증거물 장기보관 시스템’을 마련해 두지 않았고, 현장에서 발견된 증거물들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다.

다음커뮤니케이션과 어린이재단이 진행하는 아동 성범죄 공소시효 폐지를 위한 100만 서명 캠페인 (출처: 경향DB)


지금 발생하고 있는 사건들도 마찬가지다. 공소시효를 염두에 둔 채 ‘강력사건 증거 영구보존 시스템’을 구축하지 않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는, 지금 해결하지 못하는 사건은 앞으로 어떤 과학수사 기술이 발달하더라도 해결할 수 없다. 물론 공소시효 제도의 필요성과 유용성은 분명히 있다. 예를 들어 이웃집 남자가 20년 전 절도사건의 범인 같다고 신고하는 등 오랜 시간이 흘러 목격자 등 관련자들의 기억도 흐려지고, 물적 증거도 분명치 않은 수많은 사건을 고소하고 기소할 수 있게 한다면, 그로 인해 시민의 일상생활이 위협받고 괴로움이 초래돼 ‘법적 안정성’이 흔들리고 사회불안이 야기될 수 있다. 수사력 등 국가비용 낭비도 심해진다. 그렇기 때문에 극히 제한된, 반드시 필요한 ‘특정 범죄’에 한해 공소시효를 폐지해 ‘진실과 정의를 향한 실효성’을 담보하되 불필요한 혼란과 사회적 비용은 막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그동안 우리 사회가 ‘내란 및 외환의 죄’에 대해 공소시효를 폐지하고, 어린이 대상 성범죄의 공소시효를 피해자가 성인이 될 때까지 중단시키는 것을 입법화한 것은 중요한 발걸음이었다. 한 발 앞으로 더 나가야 한다. 그동안 우리가 뒤따라간 일본 역시 최근 살인죄에 대한 공소시효를 폐지했다. ‘특정 강력범죄의 공소시효 폐지’는 예방 노력 부족으로 범죄피해를 막지 못한 국가가 피해 국민에게 해야 할 최소한의 예우다.


표창원 | 범죄과학연구소 대표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5/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