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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을 가리는 갓은 세 종류가 있었습니다. 흔히 아는 꼭지가 뾰족하고 네모진 삿갓은 얼굴까지만 가립니다. 장거리를 갈 때 해와 비를 가리려고 썼지요. 또 하나는 방갓으로 꼭지가 둥글고 목 아래까지 가립니다. 어깨에 걸리지 않으며 발밑도 보도록 사방이 움푹 들어가 있습니다. 하늘 보기, 남 보기 부끄러운 불효자란 뜻으로 탈상(脫喪) 전까지 어쩔 수 없는 출타 때나 썼습니다. 그리고 상반신 전체를 가리는 부녀삿갓이 있었지요. 뾰족한 감을 세워놓고 밑동을 잘라낸 듯한 모양입니다. 비싼 쓰개치마나 장옷을 살 수 없는 가난한 여성들이 외출용으로 썼습니다(허리 아래서 양손으로 들었지요). 크기가 큰 만큼 대오리(가늘게 쪼갠 대나무)나 갈대, 부들 줄기같이 가벼운 재료로 엮었습니다.
가뜩이나 미운 사람이 더 미운 짓을 한다는 속담 ‘못난 색시 달밤에 삿갓 쓰고 나선다’가 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통행금지가 있어 남자가 잡히면 혼쭐난 뒤 날 새고 풀려나지만 여자는 잡지 않았습니다. 늦게 귀가한 시아버지, 남편이 아침에 입을 옷을 빨러 나갈 수도 있고 범죄 가능성도 거의 없으니까요. 그걸 이용해 밤나들이 외도하던 여성도 있었나 봅니다. 야밤 출입을 하며 부녀삿갓까지 씁니다. 야밤이라 길에 여자뿐일 텐데요. 그걸 왜 쓰냐니 양심이 덜컥해 핑계 댑니다. “달이 밝아 못생긴 얼굴 다 보여서… 순라군도 남정네고….” 못난 행실 알면서 때론 ‘오죽 사랑 못 받으면’ 쯧쯧, 모른 체도 했겠죠.
흐린 날 등산에 무슨 선글라스냐니 멋이랍니다. 등산로 입구에서 선글라스 쓴 남자를 만납니다. ‘달밤에 삿갓 쓰고 나온다’는 그 남자 말이죠. 집에 미운 사람 있거나 미운 취급 속에 살기도 했을 겁니다. 어쩌면 ‘그래, 가지가지 해라’일지 모르지만, 알지 모른다 알지 모르지만, 아마 양심은 찔려 등산화에 흙이라도 묻혀 올 겁니다.
<김승용 |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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