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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관중이 저술한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제갈공명이 유비에게 닥칠 위기를 예감하고, 함께 떠나는 조자룡에게 “어려울 때 꺼내보라”며 3개의 비단주머니를 주었다고 한다. 조자룡은 비단주머니를 품속에 간직하고 있다가 위기의 순간마다 하나씩 꺼내 난관을 헤쳐 나간다.

그동안 수없이 많은 위기를 헤쳐 온 우리나라에는 어떤 비단주머니들이 있었을까? 여러 가지 비책들이 있었지만, 사회안전망도 그중 하나였다는 생각이 든다. 

첫 번째는 고용보험이다. 1997년 IMF 외환위기는 경제와 사회를 혼란에 빠뜨렸다. 당시 150만명이 넘는 실업자가 발생했다. 그 당시 실업자들이 새로운 직장을 찾을 때까지 ‘버팀목’ 역할을 했던 실업급여는 1995년 7월부터 시행된 고용보험제도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두 번째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이다. 외환위기의 파장은 사회 양극화로 이어졌다. 1990년대 0.26 내외였던 지니계수가 1999년 0.3까지 올라가는 등 불평등이 심화되는 가운데, 2000년부터 시행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일할 능력이 없는 빈곤층에게 최소생계비를 지원하여 양극화를 완화하는 최소한의 구심점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러한 사회안전망을 토대로 우리 경제는 위기를 극복하고, 꾸준한 성장을 지속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우리나라의 1인당 국내총생산이 3만달러를 넘어서면서 세계에서 7번째로 국민소득 3만달러, 인구 5000만명을 의미하는 ‘30-50 클럽’에 가입하기도 하였다. 

지금 우리는 다시 한번 중대한 기로에 놓여 있다. 경제규모는 커졌지만, 생산가능인구 감소와 함께 저성장 고착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아울러 음식점업, 도·소매업 등과 같은 전형적 자영업자뿐 아니라 프리랜서, 1인 사업자와 같은 새로운 고용형태가 증가하고 있다. 노동시장 내·외부 격차는 소득 및 교육 격차로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사회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국민과 국가가 함께 성장하고, 그 결실을 함께 누리는 ‘포용국가’가 필요하다. 많은 선진국들이 시장경제를 추구하면서도 고용불안, 임금격차 등에 대비한 보장을 제공하고 있다. 우리는 어떠할까? 그간의 노력에도 여전히 사회안전망은 충분하지 못하다. 대표적 고용안전망인 고용보험의 경우도 취업자의 55%만을 포괄하고 있어 많은 실업자, 청년, 자영업자, 경력단절 여성들이 제도 밖에 존재하고 있다. 

특히 저소득층은 더욱 어려운 상황이다. 노동연구원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기준 중위소득 60% 이하의 가구원은 실업급여 경험률이 10%가 채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럼에도 일정 수준 이상의 소득이 있으면 기초생활보장제도에 따른 생계급여 지급이 중단되기 때문에 일을 통한 자립 유인도 낮은 것이 사실이다. 

정부는 이러한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일을 통한 빈곤탈출을 지원하기 위해 ‘한국형 실업부조’ 제도를 준비하고 있다. 새 정부 출범과 함께 국정과제로 채택하였고, 지난 3월에는 경사노위 사회안전망개선위원회에서 한국형 실업부조 운영원칙을 담은 합의문을 채택하였다. 

실업부조에 ‘한국형’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OECD 선진국에서 운영하는 전통적 실업부조 제도와 차별성이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수당 지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저소득 구직자, 영세 폐업자영업자 등이 취업을 통해 자립하도록 돕고, 이들의 빈곤을 완화시키는 데 목적이 있다. 

정부는 한국형 실업부조가 ‘제갈량의 비단주머니’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이러한 사회안전망 확충이 포용성장의 토대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이재갑 | 고용노동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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