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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지도(言語地圖·linguistic map)라는 것이 있다. 19세기 후반, 독일의 게오르크 벤커(1852~1911)가 처음 시도하고 프랑스의 쥘 쥘리에롱(1854~1926)이 확립한 언어지리학에서 사용하는 지도이다. 이는 각 나라의 지방 말을 조사해 그 말이 사용되는 지역에 표기를 하는 것으로 일반 지도와는 다르다. 일반 지도도 제작하기까지 수많은 답사와 측량을 실시해야겠지만 언어지도 또한 긴 시간을 두고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채록을 하거나 서면 질의응답 조사를 진행해야 한다. 

내가 비록 학자가 아니지만 이런 쪽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밥벌이를 위해 전국 골골샅샅 다니며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부터다. 그들을 촬영하고 나누는 이야기들은 대개 녹음을 했고 공부방으로 돌아오는 자동차에서 음악 대신 그들과 나눈 이야기 테이프를 듣곤 했다. 그렇게 해야 딕테이션(dictation)이라고 하는 녹음된 내용을 풀어쓰기가 쉽기 때문이었다. 서너 시간 이야기를 나누고 다시 서너 시간 자동차 안에서 그 내용을 듣고 있으면 자연스레 스토리의 대강이 외워지기 마련이다. 더구나 그날 만난 사람의 이야기 습관이나 사용하는 언어의 특징까지도 알아차리기가 쉬웠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그렇게 10년 정도를 작업하고 나서 편집인으로 한국의 문화와 사상, 사람과 자연 따위를 다루는 계간지의 창간을 주도하게 되었다. 당연히 민중의 이야기를 채록하는 꼭지를 만들었고 한 사람당 100장 가까이 되는 분량의 채록 원고를 서너 편 실었다. 그러곤 마지막에 그들이 사용한 낱말들을 정리한 꼭지를 만들어 부록처럼 넣었다. 그렇게 하면 같은 뜻을 지닌 낱말이라도 지역에 따라 서로 다르게 표현되는 것을 쉽게 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큰 고개인 대관령의 이쪽과 저쪽인 평창군 횡계나 강릉시와 같은 곳을 예로 들자.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말을 채록해 이야기와는 별개로 낱말을 따로 정리했다. 즉 평창군 횡계읍 대관령면 김모씨의 평창 말 혹은 강릉시 성산면 박모씨의 강릉 말 같은 식으로 그들이 사용한 말을 정리했다. 대개 큰 고개를 중심으로 서로 다른 지방에 사는 이들은 어투나 낱말이 다른 경우가 많다. 지리학적으로 높은 산이나 큰 강은 지방을 서로 구분하는 경계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큰 고개를 넘어야 하고 경상도와 전라도와 같이 서로 다른 지방 말을 사용하는 곳이지만 전라도 땅에서 경상도 말을 듣거나 경상도 땅에서 전라도 말을 듣는 경우도 많았다. 지금은 교통이 좋아져서 사람들의 이동이 쉬워 토박이의 개념이 애매하지만 예전에는 산골과 같은 경우 태어나서 한 차례도 타지로 나가지 않고 붙박이로 사는 경우가 흔했다. 그럼에도 서로 다른 말을 사용하는 경우는 혼인으로 인해 생기는 일이었다. 부부 중 어느 한 사람이 고개를 넘어서 타향으로 시집을 가거나 장가를 왔기 때문이다. 그들이 서로 혼인을 하기 전까지 사용하던 말은 혼인과 함께 다양한 변화를 하기 시작한다. 

어느 한 사람의 말이 다른 사람의 말과 함께 뒤섞여 지역의 정체성과는 어울리지 않는 독특하고 새로운 말이 되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한 사람의 말을 다른 사람이 좇아서 닮는 경우도 있었으며 두 사람 모두 고집스럽게 자신이 사용해오던 말을 버리지 않고 꿋꿋이 사용하는 경우도 더러 볼 수 있었다. 그래서 큰 고개 아래 양쪽 마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채록하러 갈 때는 두 눈을 반짝일 만큼 흥미로웠다. 덕분에 지리학적으로 높은 고개가 언어학적으로도 험한 고개라는 사실을 알게 되기도 했다.

또 그렇게 채록을 하거나 조사를 하는 대상들은 앞에서도 잠깐 말했지만 한 장소에서 눌러 산 토박이들이나 높은 교육수준을 자랑하기보다 평범한 정도가 더욱 좋다. 아무래도 타지로 나가게 되면 다른 지방에서 온 사람들과 어울리게 되고 그러한 경험들이 본인이 지니고 있던 언어의 정체성을 흔든다. 또 교육수준은 자신을 포장하는 방법을 알게 하기 때문에 말을 변화시킨다. 그러니 경제활동을 위해 수시로 고향과 타향을 드나들거나 군대를 다녀와야 하는 남자들보다 여자들이 채록 대상으로는 더욱 좋다. 물론 그것은 내가 왕성하게 채록을 하던 25년 전쯤의 이야기다.

그렇다면 위에 말한 조건을 기준으로 채록할 수 있는 대상을 찾아보자. 군대 복무와 경제활동의 책임을 지는 남자들보다는 여자들이 타지의 경험이 적을 수 있다. 그러나 요즘은 중년의 여자들도 타지로 나가 경제활동을 하는 경우가 점점 많아지는 추세여서 마땅치 않다. 그렇다고 아직 말이 여물지 않은 어린 사람들을 대상으로 삼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남는 사람들은 나이가 많은 여자들뿐이다. 그렇지만 여자들은 그 마을에서 태어나서 그 마을에서 늙어가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흔치는 않다. 대개 타지에서 시집을 왔기 때문이다. 더러 남자들의 경우에도 군대를 가지 못하여 마을에서 붙박이로 살아온 사람들이 있으면 채록의 대상으로 더할 나위 없지만 그런 사람들을 만나기는 만만치 않다. 

사실 우리나라에도 언어지도가 있기는 하다. 방언사전이라는 이름으로 출간되기도 했고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전신인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도 조사를 진행했지만 북한 지역의 말에 대한 조사 미비로 발표되지 않은 것으로 안다. 그리고 각 지방마다 조사를 진행해 언어지도를 만든 곳들도 있다. 그러나 이젠 우리나라도 누구나 열람할 수 있는 제대로 된 언어지도 한 권쯤은 가질 때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나 그것은 민간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막대한 자본과 인력이 투자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21세기 들어 우리나라는 문화적으로 더욱 성숙한 국가로 빠르게 나아가는 중이다. 그러나 아직 한 나라의 문화에 대한 근원적인 자료들이 넉넉하지는 않다. 앞에서 말했듯 오롯하게 우리말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을 찾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지금, 정부 차원에서 나랏말의 다양성과 분포를 정리해 우리말에 대한 언어지도를 발표할 시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지누 |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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