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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부터 벌레와 풀의 생육이 멈춘다는, ‘처서가 지나면 풀도 울며 돌아간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그렇게 덥다가도 양력 8월23일쯤 처서(處暑) 무렵이면 더위가 한풀 꺾여 주저앉으며 새벽엔 잠자리마저 선득합니다. 기온이 떨어지며 풀들도 한해살이를 마감하게 되는데, 풀꽃이 이울고 비틀려 돌아가는 걸 의인화해서 울며(泣) (땅속으로) 돌아간다(歸)고 재치 있게 표현한 속담이지요.

그리고 이때부터 무르던 씨앗이 차츰 영글기 시작하므로 처서가 지나고 얼마쯤부터 슬슬 벌초가 시작됩니다. 풀이 생장을 멈추고 풀씨가 덜 영글었을 때 벌초하면, 풀이 더 자라지 않아 성묘 때 웃자란 풀을 만나지 않으며 영글지 못한 씨는 다음해 봄에 풀싹을 내지 못해 일거양득이니까요.

벌초는 제사처럼 매우 중요한 일이라서 옛날에는 일가친척이 한날한시 집결해 성들을 공략하듯 낫 하나 인해전술로 집안의 봉분들을 하나씩 깎아 나갔지요. 예초기의 등장으로 품이 줄어 요즘은 적은 인원으로 벌초가 가능해졌다지만, 제각기 바빠서 시간 맞추기 어려운 시절이다보니 날짜 잡는 게 더 큰일입니다. 묘지기에게 벌초사래(벌초 값으로 부쳐 먹는 논밭) 주던 옛날마냥 알바를 구해 지번을 일러주고 결과를 사진으로 받아보지만, 남의 손에 맡긴 죄스러움과 처삼촌 묘에 벌초하듯 한 건 아닌가 싶어 이 편한 세상이 송곳자리입니다.

매장보다 화장과 수목장이 늘어나는 때입니다. 좁은 국토를 생각하는 마음보다는 묘소를 관리할 후손과 시간이 여의치 않아서겠지요. 조상을 기리고 정성을 기울이는 것이 후손의 마땅한 마음가짐이겠지만, 벌초 때 다가오면 전화기 너머로 바쁘다 울어든 얼굴과 ‘그럼 어쩌냐’ 한숨이 엇갈립니다. 후손 고생으로 대우 받자는 조상은 없을 겁니다. 조상님 오셔서 ‘그간 애썼다’ 웃으며 돌아가시게, 잡초 질 묘역, 이번 대에 정리하는 것도 윗사람으로서의 음덕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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