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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부가 정의를 세우지 않고 성폭력에 대한 편견을 세웠다. 8월14일 ‘안희정 전 지사 성폭력 사건’ 1심 선고는 피고인을 심판하지 않고 피해자를 심판한 부정의한 판결이다. 업무상 위력을 작동시키는 불평등한 권력관계를 해석할 의지와 역량이 없음을 이번 판결은 보여준다. 페미니즘 대통령을 선언한 대한민국 정부에서 사법부가 비슷한 범죄를 저지른 수많은 가해자들에게 면죄부를 준 ‘사건’이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8년8월16일 (출처:경향신문DB)

재판부는 “정상적 판단력을 갖춘 성인남녀” 간에 성적자기결정권 침해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성적자기결정권이 모두 국민에게 동일하게 주어지고 행사할 수 있는 권리일까? 노동권, 교육권, 참정권 등 헌법에 명시된 기본권은 모든 국민에게 평등하게 실현되어 왔는가? 피해와 차별을 경험한 사람의 위치에서 권리가 실현되도록 싸워야 하는 현실이다. ‘왜 성적자기결정권을 명확하게 행사하지 않았는가’란 질문은 경사로 없는 투표소를 만들어 놓고 장애인에게 ‘참정권 보장하는데 왜 투표 안 해’라고 질문하는 것과 같다. 피해자는 성폭력이 일어난 다음날에도 피해 사실을 표현하지 못하고 일해야 하는 처지에 있는 여성 노동자였다. 24시간 언제든 대기해야 하는 수행원, ‘맥주, 담배’ 단어만으로 지시가 가능한 권력. 일상적으로 안 전 지사가 수행원들과 맺은 업무관계는 권위적이었다. 공무수행이란 명목으로 수행업무라는 ‘일’은 공사, 시간, 장소 구분 없이 안 전 지사가 원하는 때와 방법으로 요구되었다. 그것이 수행원의 역할이자 역량으로 평가되었을 것이다. 물리적 폭력 없는 위력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고용허가제로 사업주 동의 없이 사업장을 변경할 수 없는 이주여성이 사업주의 성폭력을 신고할 수 있는가? 거주시설 원장이 가해자인 경우 장애여성은 저항하기 쉬울까? 성별 권력은 수많은 불평등과 함께 작동한다.

정상적 판단능력은 개인들이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갖춰야 할 조건이 아니다. 웃으며 거절해도, 고개를 숙이며 작은 목소리로 말해도, 거절할 수 없는 위치에서 보이는 난처함도 그것이 거절의 메시지임을 상대방이 받아들여야 한다. 결정권을 행사해도 인정하지 않는다면 개인의 판단능력은 무용지물이다. 피해자의 판단능력이 아니라 거절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능력을 가해자들에게 질문해야 한다. 한편으론 장애인 피해자에게 판단능력 없음이란 기준을 쉽게 적용한다. 피해자다움에 장애를 대입시킴으로써 성적자기결정권의 ‘보호’ 측면만을 강조하는 것은 성적 주체성을 제한하고 차별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결국 한국 사회에서 피해자의 성적자기결정권은 어떤 방식으로든 피해자다움이란 요건을 갖춰야 보호법익이 작동된다. 피해자를 믿지 않고 피해자다움을 믿는다.

이미 기울어진 저울에 서서 시작된 재판. 가해자 편에서 피해자에게 질문하기를 중단해야 부당한 판결을 끝장낼 수 있다. 그러나 수십년이 지나도록 사법부가 성폭력에 대한 감수성이 낮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지난 6월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성폭행 가해자인 스타 수영선수에게 솜방망이 처벌을 내린 애런 퍼스키 판사를 주민투표로 해임시켰다. 판사소환제도가 없는 한국에선 어려운 일이지만, 사법권력의 관점과 판단의 변화를 촉구하는 싸움이 적극적으로 필요한 시기다.

무엇보다 다시 태어나겠다는 안 전 지사의 말은 끔찍하다. 처벌과 반성 없이도 다시 태어날 수 있는 권력과 권세를 가진 자들의 공모가 무죄를 만들었다.

<이진희 | 장애여성공감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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