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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전의 새해’가 밝았다. 선거의 해인 올해 최대 관심사는 역시 총선과 대선에서 ‘민주개혁세력’이 승리해 5년간의 ‘어둠의 세월’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을 것인가이다(이와 관련, 새로운 시대를 보지 못하고 눈을 감은 김근태 선배의 명복을 빈다). 그러나 중장기적인 시각에서 바라본다면,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이 선거에서 고질적인 병폐인 지역주의에 파열을 낼 수 있을 것인지, ‘영남의 보수왕국’에 균열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인지이다.

사실 1987년 양김의 분열이 잠재되어 있던 지역주의를 폭발시킨 뒤, 한국 정치는 지금까지도 지역주의의 압도적인 우위 아래 약화되었지만 사라지지 않은 ‘민주 대 반민주’, 부상하고 있지만 아직 제자리를 잡지 못한 ‘진보 대 보수’의 구도가 결합되어 있는 양상을 띠어 왔다. 지역주의를 깨기 위해 온몸을 던졌던 ‘바보 노무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한국 선거의 가장 결정적인 변수는 아직까지도 ‘민주 대 반민주’도, ‘진보 대 보수’도, 부상하고 있는 세대도 아니고, 지역주의이다.

이 점에서 주목할 것은 민주통합당의 탈지역주의 움직임이다. 민주당 당대표를 지낸 정세균 의원이 호남의 지역구를 버리고 종로 출마를 선언했고 호남의 3선의원인 김효석 의원도 서울 출마를 선언했다. 한나라당의 아성인 영남에서도 새로운 움직임이 일고 있다. 친노세력의 핵심인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문성근 국민의명령 대표, 김정길 전 장관이 부산 출마를 선언했다. 특히 여러 요인으로 인해 최근 부산 민심이 변하면서 이들의 원내 진출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즉 1990년 3당통합에 의해 생겨난 대구·경북과 부산·경남의 ‘영남동맹’에 균열이 생길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민주당 김부겸 의원이 15일 국회 정론관에서 내년 총선에서 대구 출마를 선언하고 있다. /경향신문 DB

그러나 지역주의에 대한 도전의 하이라이트는 뭐라 해도 김부겸 의원의 실험이다. 수도권의 3선의원인 김 의원은 오는 총선에서 당선이 확실시되는 자신의 지역구를 버리고 박근혜 의원의 지역구이자 한나라당의 심장부인 대구 출마를 선언한 것이다.
대구가 김 의원의 고향이기는 하지만 보수의 아성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김 의원의 도전은 종로를 버리고 부산으로 내려갔던 ‘바보 노무현’의 실험보다 더 바보스러운 짓으로 주목할 만하다. 사실 박정희 정권을 무너뜨린 1979년 부마항쟁이 보여주듯이 최소한 부산은 1990년 3당통합 이전까지만 해도 민주세력의 지지기반이었던 ‘야도(야당도시)’였고 노 대통령이 1988년 총선에서 당선됐던 곳이었다. 그러나 대구는 박정희 시절부터 군사독재와 보수세력의 사령탑이었고 이강철 전 청와대수석 등 대구의 민주화운동 세력들이 끊임없이 도전을 해왔지만 ‘바위에 계란 던지기’로 끝나왔던 ‘불모의 땅’이다.

김 의원의 실험에 박수를 보내면서도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마음 한 곳에 불안감을 버릴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것은 2008년 지역주의를 깨겠다고 모든 이들의 주목을 받으며 대구에서 출마했다가 낙방하자 불과 2년 만에 경기도지사에 출마한다며 야반도주하듯 대구를 버리고 떠난 유시민통합진보당 공동대표의 ‘먹튀’에 대한 기억 때문이다.
김부겸 실험이 민주통합당의 당권경쟁을 위한 깜짝쇼에 불과하고 결국 유 대표식의 먹튀로 끝나고 말 것이라면, 차라리 하지 않는 것이 낫다. 김 의원의 실험마저 1회성 쇼로 끝난다면 유 대표의 먹튀 때문에 대구시민들이 민주화운동 세력에게 갖게 된 “그럴 줄 알았다”는 불신이 더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김부겸 실험이 한국지역주의에 균열을 내고 역사에 남기 위해서는 눈앞의 이익에 눈이 멀어 입장 바꾸기를 밥 먹듯 하는 유시민식 ‘근시안 정치’가 아니라 노무현 대통령의 ‘바보정신’을 이어받아 대구에서 뼈를 묻어야 한다. ‘바보 노무현’에 이어 ‘바보 김부겸’의 탄생을 기대하며 ‘바보 김부겸’ 실험에 박수를 보낸다.

주목할 것은 한나라당의 경우 쇄신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김 의원처럼 수도권의 중견 의원이 기득권을 버리고 호남에서 출마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나라당의 바보 김부겸’은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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