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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서강대 교수·정치학

 
“사실 우리와 한나라당이 큰 차이가 없다.” 자신의 한나라당과의 연정 제안에 대해 열린우리당 내에서 반발이 거세지자, 노무현 대통령이 한 말이다.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특히 열린우리당의 후신이라고 할 수 있는 민주통합당을 이끌어 갈 새 지도부의 출범을 보면서, 문뜩 떠오른 것이 노 전 대통령의 이 고백이다. 민주통합당의 새 지도부 출범을 축하하면서도 동시에 당의 정체성과 관련해, 민주통합당이라는 자유주의 세력과 한나라당이라는 보수세력 간의 공통점과 차이점이 무엇인가 하는 성찰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물론 민주당이 지난해 지방선거 이후, 그리고 민주당을 이어받은 민주통합당이 자신들이 추진했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반대하는 등 다행스럽게도 과거에 비해 좌클릭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이에 대한 신뢰가 가지 않는다. 사실 겉으로만 보자면, 한나라당이 더 빠르게 좌클릭하고 있다. 그리고 정강·정책으로 말하자면, 극우정당이었던 자유당의 초기 강령도, 나아가 대한민국의 48년 제헌헌법까지도 주요 산업의 국유화 등 유럽 공산당 수준으로 급진적이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정강보다는 구체적인 행동이다. 

경향신문 DB


이와 관련, 민주통합당의 변신에 의구심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1%의 투기자본과 수탈당하는 국민이라는 ‘1 대 99의 대결’의 한국판인 론스타문제에 대한 미온적 태도 때문이다. 외환은행을 인수했다가 천문학적인 수익을 내고 한국을 떠나려는 론스타는 원래 산업자본으로 인수 자체가 불법적인 것이라 이들이 외환은행을 징벌적으로 강제매각하도록 지시해야 함에도 이명박 정부가 이를 거부하고 있어 사회적 쟁점이 되고 있다. 그런데 이 문제에 대한 민주통합당의 태도는 신뢰가 가지 않는다.

주목할 것은 원래 론스타가 자격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를 은폐하고 매각을 강행했거나, 아니면 최소한 론스타의 자격을 제대로 따지지 않은 직무유기를 범해 문제의 원인을 제공한 것이 바로 노무현 정부였다는 사실이다. 즉 민주통합당이 원죄를 안고 있다. 민주통합당만이 아니다. 매각의 책임이 있는 노무현 정부의 핵심인 유시민 대표가 이끄는 국민참여당과 통합을 했다는 점에서, 스스로 진보를 표방하는 통합진보당 역시 론스타문제의 원죄를 지고 있는 사실상의 ‘공범’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외환은행 노조가 속해 있는 한국노총이 창당에 동참하면서 지난 연말 국회 등원조건으로 론스타의 국정조사를 의총에서 결정하고도, 민주통합당은 유독 이 문제만 빼놓고 국회등원에 합의해주는 등 이 문제 해결을 사실상 기피하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해 국정조사를 할 경우 자신들의 잘못과 치부가 줄줄이 드러날 것을 걱정하기 때문인가? 그 이유가 무엇이든 이 같은 미온적 태도는 민주통합당이 아직도 자신들의 과거 실정에 대한 반성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으며 이들의 변신이라는 것이 믿을 수 없다는 의구심을 강하게 갖게 한다.
통합진보당 역시 문제가 많다. 통합진보당이 민주통합당보다는 강한 목소리로 이 문제의 해결을 주장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 문제의 원인제공에 대한 국민적 사과는 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어 그 진정성이 의심된다.

민주통합당의 새 지도부 출범은 이 같은 우려를 불식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그동안 민주통합당이 이 문제에 유보적이었던 것이 단순히 원내대표가 론스타 매각 당시 재정경제부 장관으로 매각에 상당한 책임이 있는 김진표 의원이었기 때문이었다면, 이제 새 지도부는 김 대표와 달리 론스타의 국정조사와 문제해결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여야 한다.
민주통합당의 새 지도부와 통합진보당에 충고한다. 론스타 사태의 원죄를 안고 있는 민주통합당, 나아가 통합진보당은 말로만 서민과 진보를 이야기하기 전에 론스타 사태의 원인 제공에 대해 국민들에게 진솔하게 사과하고 모든 것을 걸고 론스타의 국정조사와 징벌적 매각을 관철시켜야 한다. 그것이 1%에 의해 고통받고 있는 99%의 신뢰를 회복하는 첫 걸음이다. 어떠한 감언이설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들의 원죄를 씻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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