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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은 삶에 색채를 더한다. 즐거운 순간에는 발걸음이 날아갈 듯이 경쾌하고 주변이 반짝이기라도 하는 것처럼 신난다. 괴로울 때면 가슴이 답답하고 침울하다. 그런가 하면 압박감에 시달리는 일터에서는 감정이 거추장스럽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냉철한 이성에 따라 해야 할 일들을 척척 해내고 싶다. 이성에 비해 감정은 사회적으로 온당하지 못한 것, 변덕스럽고 못 미더운 것으로 여겨진다.

좋으나 싫으나 ‘감정’은 우리 마음을 사로잡는 흥미진진한 소재다. 이러니 많은 뇌과학자들이 감정의 메커니즘을 알고 싶어 했다. 그런데 연구를 하자면 감정에 대한 기존의 정의가 수정되어야 했다. 일상에서 ‘감정’은 어떤 일에 대해 일어나는 마음이나 느낌을 뜻하지만 과학은 실험하거나 관측할 수 있는 물리적인 영역만 다루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감정’이 내포하는 풍성한 의미는 뇌과학 연구에 맞게 다듬어졌다. 뇌과학에서 ‘감정’은 기쁘거나 슬프거나 우울한 내적 경험을 포함하지 않는다. 뇌과학에서는 눈이 반달처럼 접히는 표정, 심장의 두근거림, 뇌 영역의 활동 등 감정의 물리적 현상만을 고려한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 이성과 감정의 흐린 경계

연구가 계속됨에 따라 뇌과학에서 의미하는 감정은 일상적인 의미의 감정과 더욱 달라지게 되었다. 일상에서 감정은 이성과 구별되며, 종종 이성보다 열등하다고 여겨지곤 한다. 하지만 감정과 이성은 뇌 속에서 분명하게 나눠지지 않는다.

예를 들어 극도로 혐오스러운 동영상으로 피험자들에게 스트레스를 주면, 스트레스와 관련된 신경조절물질인 노르에피네프린 분비가 늘면서 뇌 전반의 활동 패턴이 변한다. 노르에피네프린이 뇌 전반의 반응 양식을 조절한다는 사실은 뇌 속에서 이성과 관련한 영역, 감정과 관련된 영역이 분명하게 나눠지지 않음을 뜻한다. 감정과 관련된 다른 신경조절물질(도파민, 세로토닌, 아세틸콜린)도 뇌 전체의 반응 패턴을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뇌 속에서는 감정이 이성보다 하등하지도 않다. 감정과 관련된 뇌 영역으로 ‘변연계’가 자주 언급되는데, 변연계라는 용어는 진화가 박테리아처럼 단순하고 생명에서 인간처럼 고등한 생물로 진보하는 과정이라고 믿었던 20세기 초에 생겨났다. 당시에는 진화적으로 나중에 생겨난 뇌 영역인 신피질이 기억, 문제 해결, 계획처럼 고등하다고 여겨지는 기능들을 수행한다고 믿었다. 반면에 변연계와 같은 피질하부 영역들은 하등하다고 여겨졌던 기능인 감정을 담당한다고 믿었다.

변연계처럼 ‘하등한’ 뇌 영역은 감정처럼 ‘하등한’ 기능을 수행하고, 신피질처럼 ‘고등한’ 뇌 영역은 이성처럼 ‘고등한’ 기능을 수행한다는 믿음은 곧 사실이 아니라고 밝혀졌다. 기억은 이성과 관련된 고등한 기능으로 여겨졌는데 변연계의 대표적인 영역인 해마가 기억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밝혀졌기 때문이다. 변연계의 다른 영역인 편도체에서도 비슷한 일이 반복되었다. 편도체는 하등하다고 여겨졌던 기능인 감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지만 이성적이라고 여겨지는 기능인 학습에도 깊이 관련되어 있다.

변연계처럼 하등하다고 여겼던 뇌 영역이 이성에도 관여한다는 사실이 발견되면서, 이성이 감정보다 고등하다고 볼 수 없게 되었다. 단순한 동물은 하등하고 인간은 고등하다는 오해나, 생명의 진화는 진보라는 오해가 줄어들면서 특정한 뇌 부위를 하등하거나 고등하다고 구분하는 경향도 줄어들었다. 변연계라는 용어는 최신 뇌과학 논문에서도 더러 사용되지만 예전처럼 하등한 영역이라는 뉘앙스는 포함하지 않는다. 변연계의 영역들은 학습과 기억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므로 변연계가 감정에서만 중요하다고도 하지 않는다.

■ 감정이라는 안내자

흔히 현명한 판단을 하려면 감정을 배제하고 이성적으로 사고해야 한다고 여긴다. 그런데 감정이 의사결정에 항상 방해가 되는 것은 아니다. 선택이란 나의 현재 상태를 반영해서 이뤄지는 것이고, 나의 몸과 긴밀하게 연결된 감정은 나의 현재 상태를 요약해서 알려주기 때문이다.

‘아이오와 도박 과제’라는 실험을 살펴보자. 피험자들에게 4개의 카드 묶음을 제시하고, 4개의 묶음 중 하나를 골라 카드를 뒤집어 보게 한다. 뒤집은 카드의 내용에 따라 피험자들은 돈을 얻거나 잃게 된다. 4개 중 2개의 카드 묶음은 고수익 고위험이고, 나머지 2개의 묶음은 저수익 저위험인데 후자 쪽의 평균 이익이 더 높다. 대개의 피험자들은 10번쯤 카드를 뒤집다 보면 어떤 카드 묶음이 나쁜 카드 묶음인지 ‘몸으로’ 알기 시작한다. 평균 이익이 낮은 묶음을 선택할 때면 피부의 땀 분비가 늘어나는 등 스트레스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40~50번쯤 카드를 뒤집은 후에야 의식적으로도 어떤 카드 묶음이 좋고 나쁜지 알게 된다.

아이오와 도박 과제는 감정이 의사결정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실제로 감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뇌 부위인 편도체가 손상된 환자들은 아이오와 도박 과제를 수행하지 못했다. 이들은 나쁜 카드 묶음을 선택할 때도 땀 분비가 늘어나지 않았으며, 100번이나 카드를 뒤집어도 어떤 카드 묶음이 더 좋은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 감정의 의미

이처럼 감정의 뇌과학적 의미와 일상적 의미는 다르고, 이 차이가 감정에 대한 일상적인 의미를 개선하게 해준다. 예컨대 뇌 속에서 이성과 감정이 분명히 나뉘지 않는다는 사실은 자기 생각이 철저하게 이성적이라고 믿으면 위험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그렇다고 뇌과학이 의미하는 감정이 ‘감정’에 대한 유일하고 정확한 답이라는 뜻은 아니다. 과학은 과학적 탐구의 대상이 될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감정의 경우 기쁘고, 슬프고, 화나는 내적 경험이 배제되었다. 일상의 맥락에서 온갖 느낌으로 가득한 감정은 여전히 유효하다. 오늘 아침 상쾌하거나 나른하다면 그 다채로운 감정을 마음껏 즐기시길.

송민령 | 카이스트 바이오 및 뇌공학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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