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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것을 가지고 생색을 내거나 얌체같이 거저 얻는 경우를 ‘남이 차린 밥상에 숟가락 얹는다’고 합니다. ‘남의 군불에 밥 짓기’나 ‘남의 횃불에 게 잡기’ 같은 속담들도 있지요.

밥을 지으면서 동시에 난방도 하는 아궁이지만 때론 난방이 필요해 군불만 때기도 합니다. 이때 이웃집에서 씻은 쌀을 들고 들어옵니다. “불 때는 김에 우리 밥 좀 안칠게.” 자기네 땔감 아끼자는 심보지요. 그믐밤, 한 손에 횃불 들고 남은 손으로 더듬더듬 게를 잡노라면 횃불 아래서 두 손으로 열심히 주워 담는 얌체가 들러붙습니다. “우이씨, 나 안 해!” 아궁이에 물 퍼붓고, 들고 있던 횃불을 갯벌에 쑤셔버리고 싶을 만큼 얄미워 죽겠습니다.

요즘 가장 밉상에 얌체는 이런 말 하는 사람 아닐까요? “어서 며느리 들여서 효도할게요.” “장가들어서 호강시켜 드릴게요.” 수십 년 전에는 효자 냄새 훈훈한 드라마 대사였겠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이건 아내를 ‘효도의 도구’로 쓰겠다는 뜻이 담긴 말이니까요. 수발은 아내가 다 들고 효자 아들 소리는 남편이 듣고. 지금도 입으로 효도하는 건 그때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오죽하면 아내들의 원성이 ‘효도는 셀프!’라는 속담으로까지 나왔을까요.

시부모 병간호에 치매 노인 똥오줌 받아내는 건 늘 아내입니다. 슬쩍 들여다보기는 하지만 퀴퀴한 악취, 지린내에 코 찡그리고 얼굴 돌리는 그 아들이 아니라. 그런 아내를 대신해 여러 집안일들을 분담하는 건 또 아닙니다. 열 자식이 한 부모 못 모신다죠. 남들과 똑같이 그런 열 자식 중 하나로 태어났으면서 피 한 방울 안 섞인 남의 부모 밥과 병 수발을 홀로 고스란히 지는 건 당연해서일까요. 효자 없는 효부극 연출은 이제 그만합시다. 저렴한 밥집에서 물은 셀프이듯, 대리효도에 세미셀프만큼의 얌통머리는 가져야 하지 않을까요?

김승용 |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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