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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저자의 지식과 생각을 담아내는 그릇이다. 그러나 종종 책은 독자에게 깊은 상처를 안기는 ‘비수(匕首)’가 되기도 하고, 저자에게 부메랑으로 되돌아오기도 한다. 2013년 박근혜 전 대통령 방미 수행 중 성추행 의혹으로 전격 경질된 윤창중 청와대 대변인은 자신이 펴낸 책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보수 칼럼니스트였던 그는 <국민이 정치를 망친다> <만취한 권력> 등 10여권의 책을 펴냈다. 그의 성추행 의혹이 불거지자 누리꾼들은 “당신이 정치를 망쳤다” “만취한 성추행범”이라고 비난했다. 홍준표 전 경남지사는 2005년에 펴낸 <나 돌아가고 싶다>로 인해 ‘성범죄 모의’를 한 대선후보로 낙인찍혔다. 그는 이 책에서 “대학 1학년 때 친구가 짝사랑하던 여학생을 자기 사람으로 만들고 싶다며 ‘돼지흥분제’를 구해달라고 했다”고 소개했다. 무용담처럼 쓴 글이 12년 뒤 그를 ‘강간모의범’ ‘성 범죄범’이란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했다.
지난 16일 자진사퇴한 안경환 법무부 장관 후보자도 자신이 쓴 책에 발목이 잡혔다. 그는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되기 전까지 글쟁이로 필명을 날렸다. 하지만 왜곡된 여성관을 지녔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드물었다. 에세이 <남자란 무엇인가> <맥주와 사색> 등과 일간지 칼럼으로 쓴 잡문(雜文)이 낙마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줄은 그도 몰랐을 것이다.
탁현민 청와대 행정관
최근에는 여성 비하와 삐뚤어진 성의식을 드러낸 책으로 물의를 일으킨 탁현민 청와대 행정관이 ‘문제적 저자’가 됐다. 그가 쓴 <남자 마음 설명서>에는 “등과 가슴의 차이가 없는 여자가 탱크톱을 입는 것은 남자 입장에선 테러를 당하는 기분”이라는 등 필설로 담기에 부적절한 내용이 수두룩하다. 대담집 <말할수록 자유로워지다>에선 “고교 1학년 때 중3 여학생과 성관계를 가졌다” “학창 시절 임신한 선생님들도 섹시했다”는 등 저급한 성의식을 드러냈다.
야당과 여성단체는 탁 행정관의 사퇴를 요구하고 나섰다. 프랑스 문인 뒤퐁은 “글은 곧 사람”이라고 했다. 탁 행정관은 스스로 물러날 줄 알아야 한다. 그게 독자에게 비수를 꽂은 저자가 지녀야 할 최소한의 예의다. 그렇게 못한다면 인사권자가 결정해야 한다. 하지만 그도 청와대도 침묵하고 있다.
박구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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