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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일자리. 사회 전체의 화두다. 국가, 가정, 개인까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일자리는 우리 사회 최대 관심사 중 하나다. 아침마다 전국사회부의 각 지역에서 올라오는 기사보고들에도 수식어만 바뀔 뿐 며칠 걸러 거의 빠짐없이 일자리 관련 대책들이 등장한다. 

일자리 대책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곳은 단연 광주다. ‘광주형 일자리’는 일자리계의 ‘인기 브랜드’다. 정부가 상반기 중 2곳을 더 선정한다고 하자 제2, 제3의 광주형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지자체들의 유치 움직임이 뜨겁다. 

‘상생형 일자리’라는 다른 이름을 갖고 있는 광주형 일자리의 핵심은 한마디로, 임금을 낮추는 대신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나눈다는 것이다. 그런데 ‘국내 초유의 노사정 상생 모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이 상생의 한 축엔 노조의 대표 격이라 할 수 있는 민주노총이 없다. 부재를 넘어 민주노총은 아예 광주형 일자리 철회를 위한 3년 투쟁 돌입까지 선언한 상태다. 며칠 전엔 금속노조 기아자동차지부가 광주형 일자리를 적극 추진했다는 이유로 광주공장 전임 지회장 2명에 대한 제명을 결의했다.  

이유가 뭘까. 민주노총이 광주형 일자리를 반대하는 이유는 임금 하향 평준화를 불러오며 나쁜 일자리가 확산되고, 지역별로 저임금 기업유치경쟁을 초래해 자동차산업 자체를 공멸시키는 치킨게임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일리 있는 우려다.   

이에 대한 반론은? “30년 가까이 노동운동의 결론을 담아 밤낮없이 뛰며 만들었는데, 민주노총은 얘기를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광주형 일자리는 비단 임금만의 문제가 아니다. 장시간 고임금 일자리가 과연 좋은 것인지 등 미래 일자리의 가치, 노동과 인권, 여성, 소외계층 문제도 함께 얘기하고 풀어가자는 것이다.” 조합원 제명이 결의된 전임 지회장 중 한 명인, 광주형 일자리의 산파 박병규 광주시 사회연대일자리특보의 말이다. 안타까움이 묻어난다. 월급이 적은 대신, 미래를 불안하게 하는 교육과 보육, 주거 등 복지수준을 정부와 지자체가 상당 부분 사회적 임금으로 보전하기로 한 광주형 일자리는 젊은이들이 바라는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미래 일자리 가치와도 닿아 있다. 

민주노총과 광주형 일자리가 상생하는, 제3의 길은 없을까. 한국비정규노동센터 대표이자 평등하고 공정한 나라 노회찬재단 이사장인 조돈문 가톨릭대 교수는 “ ‘광주형 일자리’ 협약 자체는 상당히 위험요소가 많지만, 그렇다고 민주노총이 사회적 대화에 참여하지 않는 것은 떳떳하지 못하다”고 질타했다. 성과에 대해서는 완성차업체가 원·하청 이윤공유를 통해 협력업체들의 이윤율을 제고하고, 낮은 임금수준에 대해선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실현을 위한 장기적인 마스터플랜을 제시하며 구체적 추진전략을 갖고 협상 테이블에서 전체 노동자들을 위해 더 강한 정책을 압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1월 31일 오후 광주광역시청에서 열린 광주형 일자리 투자 협약식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광주형 일자리는 ‘적정임금’ ‘적정노동시간’ 외에도 ‘노사책임경영’ ‘원·하청 관계개선’ 등을 4대 원칙으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선 노조를 중심으로 한 사회적 대화가 핵심인데, 철학의 공유 없이 외양만 베낀 짝퉁이 여기저기로 퍼질까봐 박병규 특보는 걱정하고 있다.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지난 4일 제68차 임시 대의원대회에서 “3월 기준으로 조합원이 100만3000명”이라며 “전체 노동자를 대표하는 투쟁에 앞장서는 민주노총에 한국 사회 노동자들이 운집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1월30일 통계청이 발표한 ‘2017년 임금근로 일자리별 소득(보수) 결과’를 보면, 2017년 기준 임금노동자들의 월평균 소득은 287만원, 소득순으로 줄 세웠을 때 정중앙에 있는 이의 소득인 중위소득은 210만원으로 나타났다. 150만~250만원 미만을 받는 이들이 25.1%로 가장 많았고, 85만원 미만(16.8%), 85만~150만원 미만(15.9%), 250만~350만원 미만(14.9%) 순이었다.  

이 대목에서 궁금하다. 조합원 100만 돌파로, 제1의 노총을 눈앞에 두고 있는 민주노총은 월급 250만원 안되는 절반 이상의 노동자를 대표하고 있는가. 또 하나, 민주노총의 가치는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강원도 산불의 와중 시민들은 훌륭했다. 위험 앞에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팔을 걷어붙이고 서로 손을 내밀었다. 시민들은 서로 연대해 위기를 극복했다.   

시민들이 민주노총에 바라는 것도 연대의 힘이다. 전체 노동자의 대표라 말만 하지 말고, 일하는 모든 이들을 품으라고, 취업난에 신음하는 예비노동자들까지 품으라고, 노조의 존재이유를 묻고 있다. 

반대는 쉽다. 그러나 시민들이 기대하는 건 장외에서 훈수 두고, 판을 깨는 노조가 아닌, 함께 희망을 얘기하고, 나와 내 이웃을 지켜주는 노조다. 반대해야 할 때도 협상 테이블에서 설득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노조를 시민들은 원한다. 광주형 일자리는 좋은 일자리도 나쁜 일자리도 될 수 있다. 좋은 일자리는 좋은 노조가 만든다.

<송현숙 전국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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