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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강서구의 서울식물원은 그 규모가 엄청나다. 무릇 아니 그런 데가 어디 있겠더냐. 이곳도 시설은 사람들이 전적으로 만들었지만 그 운영권의 절반은 하늘이 소유하고 있다. 임시개장을 했지만 당장 야외에 꽂혀 있는 나무들은 내년 봄을 하릴없이 기다리고 있다. 하늘에서 보면 거대한 꽃잎 모양의 온실로 발길을 돌려 열대관과 지중해관을 둘러보았다. <어린왕자>에 등장하는 바오바브나무를 설명하는 안내판의 한 구절을 인상적으로 마음에 담고 바로 이웃한 겸재정선미술관으로 향했다. “바오바브나무는 2000년 이상 생육이 가능한 식물이다. 옛아프리카 원주민들은 원통이 크고 중간이 비어 있는 바오바브나무를 무덤으로도 사용했다.”

겸재의 그림은 이른바 진경산수의 경지를 체득한 작품이다. 겸재의 산수화는 너무 멀리 있는 풍경을 담았기에 그림 속 나무는 마음으로 짚어야 한다. 그래도 잘생긴 조선의 소나무는 쉽게 알아볼 수 있고 간혹 훤칠하게 늘어진 버드나무도 눈에 들어온다. 흠뻑한 기분으로 미술관을 나선다. 들어갈 때 못 본 나무들이 눈으로 번쩍 들어온다. 그림과 짝을 맞추었는가. 뜰 앞에 우뚝한 건 소나무와 버드나무. 버드나무는 종류가 제법 많다. 오늘 겸재와 어울린 건 수양버들이다. 줄기 끝 하늘에 별도로 뿌리가 있는 듯 아래로 능청능청 처지면서 울타리 역할도 한다. ‘인왕제색도’를 떠올리며 소나무 옆 ‘겸재정선공덕비’를 읽는데 이런 글귀가 있다. “(…) 그 화풍이 너무도 파격적이어서 조선산수화가 선생으로부터 개벽이 시작되었다 (…) 선생이 쓰고 버린 몽당붓을 묻으면 무덤을 이룰 지경이라고 한 말 ‘매필성총(埋筆成塚)’에서 그 사실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오늘 내가 방문한 두 장소, 식물원과 미술관을 연결시켜주는 건 나무이지만 무덤에도 마음이 쏠린다. 봉분이야 사람들이 만들겠지만 무덤을 앉히고 이를 실질적으로 건사하는 건 하늘이겠다. 구름 밑을 쏘다니는 동안 나 역시 걸어다니는 무덤에 불과하겠군. 한 폭의 그림처럼 수양버들과 어울린 겸재정선미술관을 뒤돌아보는데 얼핏 그런 생각이 들었다. 수양버들, 버드나무과의 낙엽교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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