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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 전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라는 글을 쓰고 대학에서 나왔을 때가, 마침 20대 총선을 4개월쯤 앞둔 시점이었다. 그때 만난 사람들은 나에게 “정당에서 연락 안 왔어요?” 하고 많이 물었다. 나의 이야기가 그럭저럭 화제가 된 시점이었다. 그러면 “저 같은 사람에게 무슨… 정치는 잘 모르고 하고 싶지도 않아요”라고 답했다. 나와는 멀다고, 정확히는 나와는 멀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물론 투표도 때마다 하고 남들만큼의 정치적 입장도 가지고 있지만, 의결권을 가진 당사자가 된다는 건 완전히 다른 일이다. 사실 국회가 아니라 구의회에 앉아 있는 나를 떠올리는 일조차도 민망했다. 나보다는 그 자리에 어울리는 사람들이 아주 많이 있을 것이다.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계속 글을 쓰기로 했다. 저마다 좋아하거나 잘할 수 있는 일이 있는 법이다. 대학원생과 시간강사 처우 개선을 위한 글을 쓰고 책으로 냈고, 모 정당에서 ‘지방시법’이라는 것을 발의하고 싶으니 발언해 달라고 해 국회에 다녀오기도 했다. 정당에서 연락이 오기는 온 셈이다. 그러나 내가 무엇을 해도 내가 가진 간절함만큼의 변화를 이끌어내기는 어려웠다.

대학에서 연구자로 존재하는 동안 그 공간이 가진 여러 균열과 마주했다. 왜 시간강사는 4대보험을 보장받을 수 없을까, 왜 방학 중에는 급여가 나오지 않을까, 왜 퇴직금을 받을 수 없을까, 하는 의문들을 자연스럽게 가졌다. 거기에서 한발 더 나아간 누군가는 구체적인 처우 개선을 대학에 요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목소리가 주목받기란 아주 어렵다. 누군가는 자신의 인생을 던져서 아주 잠시 말할 기회를 얻고, 누군가들은 거리에 모여서만 간신히 주목받을 수 있다. 간절하게 변화를 원한다면 그만한 노력과 희생을 해야만 한다. 그래서 누구나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주변을 변화시키고 싶어 하면서도 쉽게 용기를 내지 못한다.

그런데 변화라는 것은 제도를 바꾸는 데서 온다. 어디에 가더라도 이것은 해도 되고 저것은 하면 안됩니다, 하는 크고 작은 규정들이 있다. 정치인은 그러한 제도를 만들고 고치는 사람이다. 개인이 직장을 그만둘 각오를 하고 수만명이 거리에 모여 할 수 있는 일을, 그들은 앉은 자리에서 발의하고 결정하며 해낼 수 있다. 물론 ‘앉은 자리’라고 표현할 만큼 간단하지는 않겠으나, 그만큼 큰 권한을 위임받은 이들이다. 대학의 여러 문제들 역시 국회 교육위에서 제도를 손보는 즉시 모든 연구자의 삶이 그에 영향받게 된다. 예를 들어 “시간강사에게 4대보험을 보장하고 퇴직금을 지급해야 한다”라는 규정이 생긴다면, 대학은 이런저런 편법을 사용해 비용을 줄이려고 하겠으나, 결국 그에 따르게 된다. 얼마 전 시행된 시간강사법은 많은 사람들의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몇년 동안 ‘정치하기에 어울리는 사람은 누구인가’ 하는 고민을 하다가, 얼마 전 답을 얻었다. 정치는 간절하게 변화를 바라는 이들이 해야 하고, 누군가의 간절함에 응답할 수 있는 이들이 해야 한다. 간절히 무언가를 바라는 사람이 닿게 되는 지점이 결국 정치일 것이다. 그러니까, 정치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은 없고 정치와 멀어야 하는 사람도 없다. 당신도 나도 정치를 할 수 있다.

21대 총선의 당선인들 역시 저마다의 간절함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각자의 자리에서 본 균열들을 기억하고 타인의 간절함에 귀 기울이면서 많은 제도를 손보아 주기 바란다. 무엇보다도 180석 이상의 의석을 갖게 된 여당에 거는 기대와 걱정이 더욱 크다. 누구보다도 정치에 어울리는 이들일 것으로 믿는다.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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