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지난 칼럼=====/경향시선

스틸

opinionX 2019. 9. 9. 13:30

지금 막 입술을 빠져나온

동그라미 담배 연기처럼

뜨거운 목구멍 문양으로

쓰라린 목젖 문양으로


흩어지는 연기를

한 코 한 코 엮어

태피스트리를 짠 사람이 있다


호시탐탐 달아나는 바람의 코를 꿰어

벽에 걸어놓고야 말겠다고


핏빛 노을 번져드는 사막에

웅크리고 앉아 컵라면을 먹던 사람

그가 놓친 건 무엇이었을까


셀 수 없는 정지화면이

모여 한 생애가 되고


한 번 멈춰두고 영원히 잊어버린

영화의 한 컷처럼 나는

지직거린다


한 코만 놓치면

주르륵 풀어져버리는

마음은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정채원(1951~)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태피스트리는 여러 가지의 색실로 그림을 짜서 넣은 직물을 뜻한다고 한다. 한 코 한 코를 서로 끼워서 뜨개 옷이 되듯이 하나하나의 색실을 엮어서 면직물이나 모직물 등을 만드는 것일 테다. 

시인은 우리의 생애도 씨실 혹은 날실과 같은 수많은 정지화면이 모인 것이라고 말한다. 영화의 경우라면 한 장면의 사진, 즉 스틸이 모이고 모여서 영화의 필름을 완성하듯이. 

그러나 우리의 삶의 시간은 연기와 같고, 한줄기의 바람과도 같아서 이내 뿔뿔이 흩어지고 잊히기 쉽다. 우리의 마음 또한 코와도 같은 하나의 실마리에 의해 풀어져버리기 쉽다. 

물론 가뭇없이 사라지는 시간들 속에 강렬한 기억의 한 순간이 있다. 한 번 세차게 쏟아진 소나기와도 같은 정지화면의 시간이 있다.

<문태준 시인·불교방송 PD>

'=====지난 칼럼===== > 경향시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전화를 걸고 있는 중  (0) 2019.09.23
자화상  (0) 2019.09.16
솜반천길  (0) 2019.09.02
따스한 것을 노래함  (0) 2019.08.26
초식동물  (0) 2019.08.19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