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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부는 날이면

전화를 걸고 싶다

하늘 맑고 구름 높이 뜬 날이면

더욱 전화를 걸고 싶다


전화 가운데서도 핸드폰으로

멀리, 멀리 있는 사람에게

오래, 오래 잊고 살던

이름조차 가물가물한 사람을 찾아내어


잘 있느냐고

잘 있었다고

잘 있으라고

잘 있을 것이라고


아마도 나는 오늘

바람이 되고 싶고

구름이 되고 싶은가보다

가볍고 가벼운 전화 음성이 되고 싶은가보다


나는 지금 자전거를 끌고

개울 길을 따라가면서

너에게 전화를

걸고 있는 중이다.


나태주(1945~)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시인은 개울이 흘러가는 걸 보고 따라가면서, 자전거를 끌고 홀로 가면서 누군가를 떠올려 전화를 한다. 멀리 떨어져 살고, 한참을 잊고 살았던 한 사람이 문득 떠올랐던 것이다. 그이에게 전화를 걸어 어제의 일을 묻고, 오늘의 안부를 전하고, 내일의 안녕을 기원한다. 따뜻하고 밝고 경쾌한 음색으로. 착하고 어진 성품에서 생겨난 전화 음색으로.

나태주 시인은 자신이 쓴 글에서 시인이 갖추어야 할 덕목으로 선량함을 꼽는다. “시인들은 겸손해야 하고 늘 자기만의 문제나 느낌, 생각에만 몰두하지 말고 주변의 모든 사람들의 그것에 대해 겸허히 귀를 기울이고 부드럽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썼다. 시는 “다른 사람들을 위한 시”여야 한다고도 했다. 이러한 성정은 우리 모두에게도 꼭 필요한 것이 아닐까 한다.

<문태준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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