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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 엉망으로 돌아가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최근에는 한반도에 지진마저 발생해 불안이 가중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불안해하는 이유는 대체로 미래가 불투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정해진 미래>(조영태, 북스톤)에서는 미래를 예측하는 ‘인구’라는 상수(常數)가 있기에 ‘사회적 미래’는 갈 길이 이미 정해졌다고 말합니다. 다만 개인의 미래는 스스로 개척해내야겠지요.

인구학적 관점으로 가장 눈여겨보아야 할 세대는 1, 2차 베이비붐 세대입니다. 베이비붐 1세대는 1955~1964년생이고, 2세대는 1965~1974년생을 가리킵니다. 저자는 한마디로 ‘58년 개띠’와 ‘70년 개띠’ 간의 대결이라네요. 두 세대는 인구 크기가 얼추 비슷하고, 연이어 우리나라의 경제발전을 이룩했습니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그중 1세대가 은퇴하기 시작했습니다. 55세에서 60세로 정년연장이 되었다지만 태반은 50대 초반에 짐을 싸고 있습니다. 직장인의 끝은 ‘치킨창업→적자폐업’이라는 우스개도 있는 마당이니 이들 은퇴자가 우리 사회를 뒤흔들 것으로 보입니다.

<피파세대: 소비심리를 읽는 힘>(라의눈)의 저자인 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2020년 베이비부머의 맏형(1955년생)부터 65세(정년연장의 연령시한)로 접어들면 이후 대략 10년에 걸쳐 1000만 인구가 시니어마켓의 잠재고객으로 합류한다. 이런 거대시장을 방치할 이유는 없다. 되레 선제·미시적인 접근전략이 서둘러 필요할 때다. 주지하듯 시니어마켓은 초기 시장”이라고 말합니다.

전 교수는 이들 세대를 ‘피파(PIPA)세대’라고 부릅니다. 가난하고(Poor), 고립됐으며(Isolated), 아픈(Painful), 세대(Aged)라는 것이지요. “저성장·인구병·재정난이 전대미문의 거시환경적인 불안기운이라면, 빈곤·질병·고독의 트릴레마는 역시 한국 사회가 최초로 경험하는 미증유의 개별차원적인 생활악재가 아닐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이들이 앞으로 ‘핏줄봉양’이라도 받으며 노후를 보낼 가능성이 매우 적으니 그야말로 노후가 공포인 셈이지요.

오쿠다 히데오 장편소설 <나오미와 가나코>(예담)에서 나오미는 백화점의 외판부 사원입니다. 나오미가 다루는 개인 고객은 물쓰듯 돈을 쓰는 사람들입니다. 치매를 앓고 있지만 죽을 때까지 돈을 써도 돈이 마르지 않는 노인도 등장합니다. 나오미는 처음에는 “슈퍼마켓에서 달걀 사듯 보석을 구입하는 손님들에게 깜짝 놀랐지만” 점차 그 일이 익숙해집니다. 그런 부유층에게 의지하는 경제가 제대로 굴러가지는 않을 것입니다.

사실상 일본의 백화점은 이미 젊은층을 포기하고 은퇴하는 시니어층에 주력하고 있지만요.

일본은 고령화를 가장 먼저 겪는 나라입니다. <2020 시니어 트렌드>(사카모토 세쓰오, 한스미디어)에서는 시니어, 노인, 실버 등의 단어가 아닌 ‘엘더’(연장자), ‘새로운 어른’ 또는 ‘50+세대’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일본에서 2020년이면 성인 1억395만명 중 50+인구는 약 6000만명이 된다고 합니다. 10명 중 6명이 50+세대가 되는 것이지요. 40+로 범위를 넓히면 약 7800만명으로 어른 10명 중 8명은 40+세대가 되어 버립니다. 사회 전체가 어른이 되는 사회가 됩니다.

피터 드러커는 생전에 “일본의 단카이 세대가 경험과 지혜를 살려 은퇴 후에 사회적 활동에 종사한다면 일본은 세계 경제의 새로운 모델이 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실제로 <2020 시니어 트렌드>에서는 일본이 잠재력과 폭발력이 높은 ‘새로운 어른 시장’을 어떻게 키워가고 있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저자는 기존의 고령자를 보는 시각부터 바꿔야 한다고 말합니다. “‘황혼 중노년·성숙 중노년’에서 ‘젊고 센스 있는 어른’으로, ‘여생을 보낸다’에서 ‘인생의 꽃을 피우고 싶다’로, ‘시들어가는 노후’에서 ‘인생 최고의 시기’로 크게 전환해야 마땅하다는 것이지요.

저자는 50+세대의 2대 자본으로 ‘건강’과 ‘경제’를 제시합니다. 이것들은 사실 불안요소이기도 하지만 자본이기도 합니다. 무병인 것보다 하나의 병이라도 껴안고 살아가는 일병식재(一病息災)이거나 개호(간병)를 받지 않겠다는 각오를 하고 노력을 하면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위기가 곧 기회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자가 제3의 자본으로 내세우는 것이 바로 ‘커뮤니케이션’입니다. 특히 손자 세대까지 품은 3대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일본도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신 3대 네트워크 가족’으로 전환되고 있다고 합니다.

개성이 강한 3대 핵가족들이 함께 사는 것이 아니라 가까운 곳에서 따로 살면서 소셜미디어를 통해서 소통한다는 것이지요. 피라미드 구조의 봉건적인 가족 관계가 아닌 수평적이고 서로를 속박하지 않는 ‘네트워크 가족’으로 바꿔가는 모습들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가령 3대가 함께하는 ‘야산 탐험 여행’은 조부모의 유년기 체험을 손자·손녀에게 가르쳐줄 수 있는 여행이었습니다. 투구벌레를 백화점에서 사서 기른 부모가 아닌 야산에서 투구벌레를 잡았던 조부모가 야산 탐험을 하면서 그 경험을 손자·손녀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감동적이었습니다.

소셜미디어의 확산은 “아날로그적인 대면의 장소와 디지털적인 인터넷의 융합”을 가능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세대가 갈등할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도 일본의 사례에서 고령화 문제 해결의 단초를 반드시 얻어내야 할 것입니다. 반드시 그래야 합니다.

한기호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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