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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정치민주연합이 위기다. 지난달 보궐선거에서 4 대 0으로 패배한 뒤 당은 내홍에 휩싸여 있다. 친노, 비노, 호남 등으로 갈라져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다. 이른바 비노와 호남에서 문재인 대표에게 선거 패배 책임을 지고 물러나라는 소리까지 나온다.

한번 생각해보자. 먼저 친노패권주의. 야당에 친노는 분명히 있다. 야당에는 노무현정신을 계승하고자 하는 사람이 당연히 많이 있다. 친노로 분류되는 정치인은 야당 안에서 비교적 진보개혁 성향이다. 나도 노무현 정부에서 일했으니 친노인가? 그렇다. 나는 친노다. 그러나 나는 이순신, 여운형, 김규식, 조봉암도 존경하므로 나는 친노인 동시에 친이, 친여, 친김, 친조다. 누구나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고 문제될 게 없다. 그러면 친노 뒤에 붙어다니는 패권주의는 어떤가. 자기들끼리 권력을 독점하면서 다른 사람들 위에 군림한다면 패권주의라고 욕먹을 만하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친노패권주의의 구체적 증거를 댄 적이 없고, 실체가 없는 막연한 주장에 불과하다. 구름 같은 이 말의 파괴력은 대단히 커서 실제로 야당의 분열을 일으키고 있다. 만약 야당 안에 이런 패권주의가 있다면 그것은 심각한 문제이고, 당연히 개혁 대상이다. 만약 패권주의의 실체가 없다면 당 안에서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은 명백한 해당 행위다.

선거 패배의 책임을 따져보자. 보궐선거 네 군데 중 인천과 경기도 성남은 여당 후보가 강력해서 처음부터 야당에 어려운 싸움이었다. 나머지 두 곳은 야당 승리가 예상되는 지역이었는데, 뜻밖에 야당의 중진, 그것도 노무현 정부에서 장관까지 지낸 두 사람이 갑자기 탈당을 해서 독자 후보로 나섰다. 이들은 여당보다 야당 비판에 더 열을 올렸다. 두 사람이 당에 남아 있기만 했더라도 2 대 2가 되었을 것인데, 결과는 4 대 0이다. 당연히 패전의 책임은 탈당한 이들에게 있다. 탈당한 두 사람을 나무라는 대신 문재인 대표더러 책임지라고 하는 것은 사리에 어긋난다.

4.29재보선 서울 관악구을 선거구에서 당선된 오신환 새누리당 후보가 축하 꽃다발을 걸고 지지자들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말이 난 김에 호남에서 말하는 이른바 ‘호남 소외론’에 대해서도 따져보자. 참여정부 시절 호남이 푸대접을 받았다는 소리가 자주 들리는데 그 근거가 무엇인가? 참여정부 때 청와대인사보좌관(나중에 인사수석) 직은 주로 호남 출신이 맡았다. 참여정부 때 호남 출신 장관이 적다는 소리를 자주 들었는데, 5년 동안 호남 출신 장관 비율은 4분의 1을 조금 넘는다. 이는 인구 비율로 따지면 다른 지방에 비해 적지 않다.

노무현 정부는 고위직 인사에서 지방 출신을 우선적으로 뽑는다는 정신으로 일한 최초의 정부였고, 그런 점에서 수도권이 소외당했다고 불평한다면 통계적으로 약간 타당성이 있을지 모르나(수도권 집중의 긴 역사를 보면 수도권의 이런 불평도 타당성이 별로 없다), 호남 소외론은 전혀 근거가 없다. 참여정부 때는 심지어 국회의장,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국무총리, 중앙선관위원장을 지칭하는 소위 5부 수장을 몽땅 호남 출신이 차지한 적도 있는데, 어찌 호남이 홀대받았다고 할 수 있는가.

인사 이외 다른 것도 보자. 참여정부는 균형발전을 위해 서울에 있던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이전했는데, 모든 지방이 유치하고 싶어한 기관은 단연 한국전력이었다. 이 회사는 전남으로 이전했다. 그리고 광주를 아시아문화중심도시로 선정했을 때, 경북 지사는 나에게 역사적으로 보아 한국의 문화수도는 경주, 안동이 있는 경북이 돼야지 왜 광주가 되느냐고 항의한 적도 있다. 그러나 근대의 대표적 문화, 예술가들이 호남에서 많이 나와 예향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고, 광주가 비엔날레를 개최하고 있으니 광주도 문화중심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호남은 역사적으로 소외되고 차별받은 지역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참여정부는 호남 차별을 완화하고 지역 간 균형을 잡으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호남에는 참여정부 초기 대북송금 특검에 대해 섭섭해하는 사람도 있는 모양인데, 이 문제는 깊이 들여다보면 진실이 드러나지만 여기서는 지면이 없어 생략하기로 한다.

근거 없는 호남 소외론, 선거 패배 책임론, 친노 패권론으로 야당을 분열시켜서는 안된다. 원래 보수가 압도적으로 강한 한국에서 야당 하기 힘든데, 지금은 호남조차 야당을 흔들어대니 야당 하기 정말 힘들다. 이순신은 “호남이 없으면 국가가 없다(若無湖南 是無國家)”라고 말했다. 호남은 과거 나라가 위기에 빠졌을 때 앞장서 나라를 구한 빛나는 전통을 갖고 있다. 그러나 지금 호남은 실리주의의 유혹에 빠져 방향감각을 상실하고 방황하고 있다. 그래서 야당의 위기이자 호남의 위기다. 양식을 가진 호남인들의 일대분발을 촉구하며, 아주 어려운 시기에 등판한 김상곤 혁신위원장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


이정우 | 경북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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