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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의 불통. 그러나 지난 대선에서 야권이 승리했다고 해서 국민과의 소통이 원활하였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정부와 국민 간의 정책 갈등은 지난 노무현 정부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권위주의 타파를 위해 노력한 참여정부이지만, FTA 추진, 핵폐기장 선정, 행정수도 이전 등과 같은 굵직한 정책에 있어서 국민과의 소통은커녕, 심지어 국민들을 분열시키는 전략을 동원하기까지 했었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을 구조적으로 살펴보면, 5년 단임제 제왕적 대통령제 시스템에서 국민과의 소통은 애초부터 기대하기 어렵다. 짧다면 짧은 5년 동안 수백 수천 가지의 생각을 가진 국민들과 의견을 주고받으며 다수가 찬성하는 안을 만들어 집행한다는 것은 일 하지 말라는 소리와 매한가지다.
국내외 유수의 정치학 교수들이 지적하는 것처럼, 대의민주주의를 채택하는 국가에서 국민과의 소통은 행정부의 과제가 아니라 실은 정당의 핵심 역할이다.
정당이 당원의 목소리를 항시적으로 경청하고 이를 당론으로 만들어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선거를 통하여 국민들로부터 심판받는 시스템이 갖추어져야만 행정은 행정대로, 그리고 국민과의 소통은 소통대로 막힘없이 물 흐르듯 진행될 수 있는 것이다.
특히나 지금처럼 다원화된 사회에서 정당이 국민과의 소통을 충실히 이행하지 못한다면, 어느 누가 집권하든 불통의 문제에 직면할 것이다. 그것이 국민 대다수를 위한 정책이라 할지라도 이를 비판하는 소수의 목소리가 언론을 통해 확대 재생산되면서 정책의 정당성에 흠집이 생길 수밖에 없다.
정치적 기회라는 것이 있다. 1973년 미국인 학자 피터 아이싱어는 왜 유독 미국의 일부 지역에서 흑인들의 폭동이 심한지를 연구했다.
그가 찾은 결론은 사회의 주요 행위자에게 제도적으로 정치적 기회를 보장하지 않을 경우, ‘배제’된 이들은 제도적인 방법 이외의 방식으로 자신들의 의견을 표출한다는 것이다. 지금의 우리 모습이 마치 1970년대 미국의 사회 갈등을 보는 것 같아 매우 서글프다.
용산참사 유가족,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 쌍용차 해고 노동자 가족, 밀양 할매 할배들, 그리고 5포 시대를 살고 있는 이 땅의 많은 젊은이들에게 과연 얼마만큼의 정치적 기회가 제도적으로 주어졌는지 의문이다.
정치인들이 얼마나 신망을 잃었으면, 이들이 여의도로 찾아가 호소하는 대신 길거리에서 경찰들의 곤봉과 물대포에 맞서고 있는 것인가.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결코 그러해서는 안되겠지만, 80년대 종로에서처럼 돌과 화염병이 등장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한국 사회가 과거로 퇴행하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정책 갈등을 공부하는 사람이 보기에는 정치적 기회를 제약받는 ‘원자화된’ 시민사회의 힘을 결집시키는 통로가 없기 때문으로 보인다. 최근 새정치연합 지도부에 정당 개혁 요구가 빗발치고 있는데, ‘혁신’의 방향이 계파 청산이나 내년 총선 공천권 배분 기준으로 매몰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다시 얘기하지만, 새정치연합 지도부가 어떠한 세부적인 공천 기준을 내놓는다 해도 국민 대다수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인사하는 새정치 문재인 대표와 새누리 유승민 원내대표 (출처 : 경향DB)
내년 총선까지 1년가량 남은 지금은 새정치민주연합이 국민들과의 소통 실험을 하기에 최적의 기회이다.
당 지도부의 공천권, 정책 결정권과 같은 당원을 무시하는 권위적인 기득권을 내려놓고, 비례대표를 포함한 총선 후보자를 오로지 당원투표로 결정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당원 스스로가 정책을 제안하고 결정하는 플랫폼, 그리고 전국의 지구당에서 매주 당원들과 만나는 강연·토론 프로그램을 가동하는 것만이 국민들에게 정치적 기회를 보장하고, 불통의 시대를 소통으로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지금처럼 국민과 당원을 회비 내는 거수기 정도로 취급한다면, 그 어떤 개혁안을 내놓는다 하더라도 그저 가진 자들의 기득권 싸움으로 비춰질 것이고, ‘소외’된 당원과 국민은 끝내 새정치연합을 외면할 것이다.
염광희 | 베를린자유대 정치학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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