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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회담, 역사적인 2018 남북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판문점선언’을 내놓았다. 두 정상은 한반도에서 냉전체제의 완전 해체를 위한 첫발을 내디뎠다. 이제 남북관계뿐만 아니라 비핵화, 평화 체제와 관련된 모든 영역에서 대결과 갈등이 아니라 대화와 평화를 향한 여정이 시작된 것이다. 판문점선언은 1989년 미소 최고지도자가 세계적인 냉전 해체를 선언한 몰타선언에 버금가는 한반도판 몰타선언이다.

지난해 전쟁위기설에서 1년도 안돼 한반도에 엄청난 반전이 일어나고 있다. 양 정상이 40분에 걸쳐 군사분계선 도보다리 벤치에서 진지한 대화를 나누는 상상도 못한 파격이 일어났다. 남북 두 정상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했다. 올해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자는 데도 합의했다. 파격과 반전의 드라마였다.

엄청난 반전은 남·북·미 3국 정상의 이해관계가 들어맞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직설적인 화법을 구사하며 ‘통 큰 정치인’ 이미지를 선보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오는 11월 의회 중간선거를 앞두고 있다. 5월 말로 예상되는 북·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으로부터 ‘비핵화’를 이끌어낸다면 중간선거 승리 가능성은 높아진다. 여기에 김 위원장은 핵무력 완성 상태이기 때문에 북·미관계를 주도할 수 있다는, 문재인 대통령은 북·미관계를 이끄는 길잡이 역할을 할 수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본다.

남·북·미 정상의 성격 역시 반전을 이끌어 낸 배경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은 통 큰 사고를 하면서 자신들이 회담의 판을 주도하는 스타일이다. 반면 문재인 대통령은 신중하고, 우직한 곰 같은 성격의 소유자다. 한반도 평화에 대한 집념으로 자신을 부각시키기보다는 북한과 미국의 입장을 조율하며, 모든 공은 두 사람에게 넘기고 있다. 센 두 사람과 그들의 길잡이 역할을 잘하는 한 사람, 세 사람의 어울리는 조합이 한반도 판의 변화를 이끌고 있다.

판문점 회담에서 가장 인상에 남는 장면은 단연코 도보다리에서의 회담, 단독 정상회담이다.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두 정상 간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허심탄회한 대화가 이뤄졌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입장이 전달되고, 문 대통령의 평소 비핵화·평화체제에 대한 의지가 김 위원장에게 전달됐을 것이다. 김 위원장도 트럼프 대통령에게 문 대통령을 통해 자신의 입장을 전달했을 것이다.

판문점선언에서 ‘완전한 비핵화’를 합의한 것은 예상을 뛰어넘는 결과다. 구체적인 비핵화 로드맵이 나오지 않은 것에 문제 제기도 있지만, 첫술에 배부를 수 없는 일이다. 이번 정상회담은 북·미 정상회담으로 가는 디딤돌, 징검다리, 마중물 역할을 한다. 실질적으로 그 모든 공은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북·미 정상회담으로 넘어가기 때문에 완전한 비핵화 이상의 표현이 나오긴 애초에 어려웠다. 보다 중요한 것은 북·미 정상회담에서 다룰 내용과 관련해 남북 정상이 사전에 충분히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대화를 나눴다는 점이다. 남·북·미가 하나하나 신뢰를 쌓아가는 과정이다. 이제, 한반도 비핵화 문제는 남·북·미의 입장 차이를 좁히면서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열어가는 것이다.

종전선언이 연내 가능한지 갑론을박이 있다. 1953년 체제를 종식시키는 작업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출발점이다. 남북한과 미·중이 종전을 선언하고 휴전협정 체제를 평화협정 체제로 바꾸고, 여기서 지속가능한 평화협정 체결을 이루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평화체제 구축 자체는 시간이 걸리지만 종전선언은 연내 가능하다고 본다. 유념해야 할 점은 종전선언이 한반도 비핵화와 연계가 돼 있기에 북·미의 한반도 비핵화 행보 역시 함께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인상에 오래 남을 또 하나의 장면은 군사분계선을 김정은 위원장이 혼자 넘어왔다가, 두 정상이 손을 맞잡고 같이 넘어갔다가 같이 손을 잡고 다시 넘어오는 장면이었다. 두 정상은 5㎝ 높이의 군사분계선 콘크리트가 사실상 무력화된 그런 모습을 보여주면서 국제사회를 향해서 이제는 한반도가 전쟁의 공간으로써 또는 긴장의 공간으로써만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다짐했다. 그야말로 판문점이 대결과 전쟁의 공간이 아니고 이제는 대화와 협력과 교류의 공간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국제사회에 또 남북한 구성원들에게 판문점의 해체를 명확하게 보여 주었다. 판문점이 한반도 평화의 허파, 제2의 몰타가 되는 순간이었다.

<김용현 |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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