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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각지의 표준시는 영국 그리니치 천문대를 기준으로 정한다. 만국지도회의는 1884년 그리니치 천문대를 지나는 경선(經線)을 본초자오선으로 삼아 경도 15도를 벗어날 때마다 한 시간씩 시차를 뒀다.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지역이 다르더라도 같은 표준시를 사용한다. 하지만 미국·캐나다·러시아와 같이 국토가 동서 방향으로 이어진 국가에선 여러 개의 표준시를 쓰고 있다. 표준시는 정치적 목적으로 바뀌기도 한다. 중국은 1949년 공산혁명 이전까지 지역별로 5개의 시간대가 있었지만 마오쩌둥이 집권한 이후 베이징 시간을 표준시로 정하고 시차를 없앴다. 우크라이나에 속했던 크림반도는 2014년 러시아에 병합된 이후 러시아 표준시를 사용하고 있다.

4·27 남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찬 손목시계(왼쪽)의 시각이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의 손목시계(오른쪽)의 시각보다 30분 늦었다. 김 부부장이 평양 표준시보다 30분 빠른 한국시간에 시곗바늘을 맞춘 것으로 보인다. 판문점 _ 공동사진기자단

한국의 표준시는 대한제국 시절인 1908년 제정됐다. 한반도의 중심인 동경 127.5도를 기준으로 세계 표준시와 8시간30분 차이였다. 일제강점기인 1912년에는 동경 135도(9시간 차이)로 변경됐다. 총독부가 일본 도쿄 기준으로 표준시를 바꿨기 때문이다. 그러다 이승만 정부 때인 1954년 주권 회복 차원에서 대한제국 표준시로 바꿨지만 박정희 정권은 1961년 도쿄 표준시로 재변경했다. 북한의 표준시는 남한과 같은 동경 135도를 기준으로 삼아오다 2015년 8월15일부터 대한제국 표준시로 바꿨다. 남한보다 표준시를 30분 늦춘 것이다. 당시 북한은 “간악한 일본 제국주의자들은 표준시까지 빼앗는 범죄행위를 감행했다”며 “동경 127.5도를 기준으로 하는 시간을 표준시로 정하고 ‘평양시간’으로 명명한다”고 발표했다. 이른바 ‘평양시간’이 등장한 이후 개성공단 출입경과 남북 민간 교류 등에서 일부 혼선이 빚어지기도 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4·27 남북정상회담에서 ‘평양 표준시’를 ‘서울 표준시’에 맞추겠다고 했다. 김 위원장은 “평화의집 대기실에 서울과 평양 시간을 가리키는 시계 2개가 걸려 있는 것을 보고 가슴이 아팠다”며 북한의 표준시를 30분 앞당기겠다고 문 대통령에게 약속한 것이다. 북한은 5월5일부터 ‘평양 표준시’를 ‘서울 표준시’로 바꾸기로 했다. 조선중앙통신은 30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가 ‘평양시간을 고침에 대하여’라는 정령을 채택하고, 평양시간을 동경 135도를 기준자오선으로 하는 9경대시(현재보다 30분 앞당긴 시간)로 고쳐 주체107(2018)년 5월5일부터 적용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평양시간’이 3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면서 남북은 같은 시간 속에서 동행(同行)할 수 있게 됐다.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이란 먼 길은 혼자가 아닌 함께 가야 다다를 수 있다.

<박구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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