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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가 ‘올바른 교과서’라고 이름을 붙인 국정 역사교과서가 공개됐다. 그간 국민들은 역사학자 대다수가 집필을 거부한 마당에 국정 교과서가 제대로 쓰여질 수 있을까 우려했다. 이에 대해 교육부는 ‘내용을 가지고 평가해 달라’면서 서술 내용과 수준에 자신감을 보여 왔다.

국정 역사교과서라 하면 대부분은 한국사, 그중에서도 근현대사에만 깊은 관심을 가지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번에 국정화된 역사교과서에는 고등학교 <한국사>뿐 아니라 중학교 과정의 <역사>도 있다. 그리고 중학교 <역사>에는 한국사와 세계사가 모두 포함된다. 중학교 <역사>에서 세계사를 서술한 부분은 한국사 분량의 5분의 1가량이다.

중학교 과정에서 배울 <역사> 가운데 일부만 살펴보기로 하자. 중학교 <역사>의 제4장 제1절은 중국의 송·요·금 시대를 다루고 있다. 이 부분은 전체 200여쪽 가운데 4쪽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 적은 분량에서도 너무 많은 오류 내지 사실관계의 착오가 발견된다.

역사학자들이 11월 30일 서울 동대문구 역사문제연구소에서 국정 역사교과서 긴급 분석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우선 113쪽을 보면 ‘송은 거란과 화약을 맺고(전연의 맹), 평화를 보장받는 대가로 막대한 물자를 거란에 제공하였다. 11세기 후반 신종은 이러한 재정 부담을 줄이기 위해 왕안석을 등용하였다’는 내용이 나온다. 신종이 거란에 보내는 재정 부담을 줄이기 위해 왕안석을 등용하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왕안석의 개혁은 거란에 보내는 물자(세폐)의 축소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 재정 적자 상황의 타개를 목표로 삼았을 뿐이다. 재정 적자를 야기한 주요인도 거란에 보내는 세폐가 아니었다. 서하와의 전쟁으로 인해 촉발된 군사비 부담이 가장 큰 이유였다. 오른쪽 보조단에는 ‘(전시에서) 황제가 합격자를 직접 선별하였다’는 내용이 나온다. 전시는 황제가 형식적으로 주관하는 시험일 뿐이다. 황제가 시험 과정에 구체적으로 간여하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하물며 전시는 당락을 가르는 시험도 아니다. 합격자의 순위만을 정하는 시험이었다.

114쪽에도 부정확한 서술이 적지 않다. 넷째 줄에는 ‘송이 약속한 대가를 지급하지 않자 금은 이를 구실로 송의 수도 변경을 공격하였다’고 적혀 있으나, 이 또한 역사적 사실과 다르다. 금이 송을 공격한 것은 약속한 대가를 지급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송이 맹약을 어기고 금에 도발하였기 때문이다. 책은 바로 이어서 ‘금이 여진 문자를 사용하고 전통문화를 지키면서 한족의 문화에 동화되지 않고 정체성을 유지하였다’고 서술했다. 이 역시 사실에 반하는 내용이다. 금이 문화적 독자성을 유지한 것은 전반기까지이다. 12세기 후반을 넘어가면 여진족의 한족화가 심각하여 금 조정이 이에 대한 대책을 부심하게 된다.

더욱 심각한 것은 ‘패배한 남송은 금과 평화롭게 지내는 조건으로 매년 은과 비단을 제공하였는데, 이로 인해 부족해진 재정을 메꾸기 위해 강남 지역을 개발하였다’라고 서술한 부분이다. 강남 개발은 이미 2세기 후반부터 진행되고 있었다. 위진남북조와 수당을 거쳐 남송이 되면서 강남 개발은 사실상 일단락되기에 이른다. 강남 지역의 개발과 금에 대한 세폐의 제공을 연결시키는 것은 너무도 심각한 오류이다.

그 아래에 등장하는 ‘남방에서 새로운 품종의 벼가 도입되어 강남지역에서는 1년에 쌀을 두 번 수확하였다’는 서술도 대단히 곤란하다. 이곳에서는 남송 시기에 ‘남방에서 새로운 품종의 벼가 도입’되었다고 적고 있다. 하지만 남방의 새로운 벼, 즉 점성도(참파벼)는 11세기 초반인 북송시대에 도입되었다. 또한 북송과 남송을 통해 강남에서는 벼의 이기작이 거의 시행되지 않았다. 송대에 벼의 이기작이 있었던 지방은 양광(兩廣) 및 푸젠의 일부 지역이었다. 벼의 이기작이 이 시기 농업의 발달을 상징하는 것도 아니다. 이기작이 행해진 지역은 오히려 낙후 지역이었다.

중국의 송·요·금 시대에 대한 서술은 전체 교과서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도저히 용인할 수 없는 심각한 오류가 너무도 많다. 역사교과서 내용은 이념적 편향 여부를 떠나 사실관계에서만큼은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이번에 공개된 국정교과서는 적어도 중국사 부분에 관한 한 오류와 착오가 지나치게 많다. 약간의 수정을 통해 보완할 수 있는 수준을 벗어났다.

이근명 | 한국외대 사학과 교수·중국 중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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