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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서울. 오랜만에 만난 선배와 새벽녘 헤어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앞까지 천천히 걸어갔다. 그곳에 지난해 11월29일 부산경마공원에서 경마기수로 일하다 자결한 문중원님 시신이 안치된 냉동차가 서 있다. 천막에서는 누군가 또 언 몸을 겨울 애벌레들처럼 침낭 속에 쑤셔 박고 있겠지. 해를 넘기지 말자고, 설 전에는 보내주고 싶다고 몸부림치던 유가족들이 자고 있는지도 모를 일. 잠시 고개 숙이고 돌아선다.

돌아서니 길 건너, 겨울 찬바람만 휑한 광화문광장이 왜 또 이 늦은 시간에 잠 못 들고 서성이냐고 묻는다. 눈 감으면 2016년과 2017년으로 이어지던 겨울, 이곳에 넘쳐나던 촛불의 바다가 환히 보인다. 온갖 빛깔 산호초로 뒤덮인 해저처럼 황홀하고 아름다웠지. 그러나 딱 거기까지만. 다시 눈 감으면 시청광장에 우리를 본뜬 천막촌을 세우고 맞불집회로 긴장을 고조시키던 우익 태극기부대가 혹여라도 저지를 사건들이 걱정되어 새벽까지 불침번을 서다 간신히 몸을 누이던 작은 내 텐트가 보인다. 만약 탄핵이 부결되면 시위 격화 등을 빌미로 계엄 등 군이 개입할 수도 있는데 제1 표적이 될 이곳 광화문광장 텐트촌을 나는 지킬 수 있을까. 많은 상념으로 밤을 지새우던 날들도 떠오른다. 역사적 광장이 열려가고 있던 초기. 중립내각을 받으면, 책임총리를 받으면 임기 등을 보장하겠다며 박근혜에게 영수회담이나 제안하고 다니던 당시 민주당의 갈지자 행보도 떠오른다. 광장만이 박근혜 퇴진을 이룰 수 있을 거라고 벗들과 광장신문을 발행하고, 광장극장과 궁핍현대미술광장을 만들고, 매일 촛불문화제를 지키며, 몇 차례에 걸쳐 재벌구속 행진도 벌였지.

우리 모두가 그렇게 온 힘을 다해 무혈혁명을 이뤘던 광화문광장 건너편 정부서울청사 앞에 한 노동자의 피 묻은 시신이 냉동차에 실려 나와 있는 현실이 아프다. 이명박·박근혜 시절에도 용산참사 등 수많은 열사 투쟁을 해야 했지만 고인의 시신이 냉동차에 실려 길바닥까지 나와야 했던 참담한 경우는 없었다. 그래도 끄덕 않는 이 의연한 정부의 오만함에 찬사라도 보내줘야 하나. 마사회 회장은 더불어민주당, 문재인선거캠프, 코드인사라는 뜻의 ‘캠코더’ 낙하산 김낙순. 정부가 나서서 판을 깐 합법적인 도박판에서 마사회는 한 해 8조원가량의 불량한 도박 매출을 올리고 있다. 음성적인 경마도박판 규모만 11조원대라고 한다. 얼마나 많은 서민들의 가난한 꿈이 털리고 있을까. 정부가 괜찮다니 그 판에서라도 살아나가기 위해 자비 들여 영국, 호주로 승마유학 다녀오고 조교사 시험도 통과했지만 일명 ‘마피아’들에게 끊임없는 착취와 배제를 당해야 했던 이다. 15년 동안 체중조절을 위해 준단식, 배곯아가며 정부의 무한 이윤을 위해 달렸던 이다. 그러나 그렇게 달릴수록 ‘앞이 보이지 않는’ 희한한 세상. 오죽했으면 여덟살, 다섯살 어린아이들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문해두고 자결을 선택했을까. ‘마사회는 믿을 수 없어’ 유서 복사본을 따로 남기기도 했다. 알려진 대로 마사회는 진즉 경마비리를 없앤다는 미명 아래 말과 조교사, 기수, 마필관리사 등 전부를 외주화, 특수고용 비정규직화해두곤 자신들은 어떤 책임도, 관계도 없다며 버티고 있다. 그 마사회 안에 기수들을, 마필관리사들을 죽이는 죽음의 바이러스가 창궐하고 있다는 비리 고발 유언도 남겼지만 경찰은 마사회로, 마사회는 경찰로 책임을 떠넘기며 해만 바꾸고 있다. 부산경마공원에서만 일곱 명이 부당노동행위, 비리 등을 고발하며 자결했는데도 특별근로감독에 나서야 할 노동부도, 마사회를 관리하는 농식품부도, 검찰도, 감사원도, 청와대도 묵묵부답이다. 관리감독의 당사자인 정부가 사과하고 반성하며 마사회의 부정부패와 비리를 목숨 걸고 고발해 준 고인에게 고마워해야 할 일 아닌가. 

‘또 죽 쒀서 개 줬나’, 텅 빈 광화문광장이 그러면 우리 너무 쓸쓸하지 않겠냐고 그래도 희망을 가져보라고 나를 위로해주고 있었다.

<송경동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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