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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영 | 한신대 교수·국제관계학
‘드디어’ 론스타가 한국정부를 상대로 ISD 중재재판을 청구했다. 여기서 ‘드디어’라고 표현한 이유는 론스타가 ISD를 청구할 것이라는 점은 이미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시작 때부터 예견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론스타가 예상과 달리 한·미 FTA가 아니라, 자신들의 페이퍼 컴퍼니가 소재한 벨기에와 우리와의 투자협정을 근거로 일종의 우회 제소를 선택한 점이다.
2006년 12월 서명한 뒤 지난 2011년 3월에야 발효된, ‘대한민국 정부와 벨기에·룩셈부르크 경제동맹 간의 투자의 상호증진 및 보호에 관한 협정’인 한·벨기에 투자협정은 그 문언만 놓고 보면 한·미 FTA와 비교해 그나마 좀 ‘착한’ 편에 속한다. 하지만 이는 협정의 적용범위, 절차 등 일반론적인 의미에서 그렇다는 것이지, 론스타가 한국정부를 상대로 재판을 진행하기에 본질적인 차이는 없다. 아마 론스타로서도 자신에 대한 매우 좋지 않은 국내 여론 등 각종 ‘정치적’ 고려 끝에 이런 꼼수를 부리지 않았을까 싶다.
론스타 쟁점 (경향신문DB)
론스타 측이 밝힌 것처럼 중재재판은 미 워싱턴 DC에 소재한 세계은행 산하기구인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에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당장 우리 정부를 대표해 법무부가 세계은행에 불려간 것은 아니다. 지금 단계는 한·벨기에 투자협정 제8조에 나와 있는 바로 그것이다. “…어느 한쪽 체약당사자와 다른 쪽 체약당사자 투자자 간의 모든 분쟁은 처음 행동을 취하는 분쟁 당사자가 서면으로 통보하며, 가능한 한 분쟁 당사자 간에 우호적인 방법으로 해결한다. 통보에는 충분히 상세한 각서가 첨부되어야 한다.” 즉 이 제8조에 의거해 론스타 측은 벨기에 한국대사관에 ‘통보’를 했고, 이제 ‘가능한 한 우호적인 방법으로’ 분쟁 해결을 모색할 것이다. 그리고 협정문에 규정된 통보시 첨부한 ‘상세한 각서’ 내용은 정부가 공개하지 않는 한 당장 알기는 어렵다.
아무튼 론스타가 제기한 쟁점은 두 가지다. 첫째, 론스타는 과거 외환은행을 국민은행, HSBC은행에 매각하고자 했지만 금융당국의 반대에 부딪혀 계약단계에서 실패했고, 최종적으로는 올 1월 하나금융지주에 매각한 바 있다. 이 과정에서 론스타는 4조6634억원의 차익을 남겼다. 하지만 여기에 대해 론스타는 지금껏 한국 금융당국의 매각 반대로 인해 “어쩔 수 없이 필요한 시간보다 수년 더 길게 주식을 보유하게 되었고 그래서 가격이 극적으로 하락했다”고 주장한다. 둘째, 론스타의 양도차액에 대한 국세청의 과세가 “자의적이고 위법적이며 몰수적”이라는 주장이다. 이미 론스타는 외환은행 매각에 대한 양도소득세 3900억원을 돌려달라며 국세청에 청구한 상태다.
아마 올 11월쯤이면 누군지도 모를 3인의 중재 재판관이, 그들끼리 세계은행 밀실에 모여앉아 우리 금융당국의 외환은행 매각 불승인이 옳았는지를 판정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가슴졸이며 그저 결과를 기다릴 뿐이다. 대한민국 국민 99%는 ISD가 뭔지도 모르고 관심도 없다. 또 이로부터 터럭만큼의 혜택받을 일도 없다. 하지만 재판에서 패소한다면 4조6000억원을 ‘먹고 튄’ 론스타라는 사모펀드에 다시금 피같은 세금을 모아 배상을 해 주어야 한다. 혜택볼 일은 없지만, 물어줘야 할 의무는 있다. 먹튀자본에 대한 금융당국의 공익적 결정과 론스타의 사익 추구 사이의 분쟁이 이번 사태의 본질이다. 초국적 자본의 사익 앞에 공익과 공공성이 끊임없이 위협받는 새로운 신자유주의적 일상이 이제 탄생하고 있다는 말이다.
ISD가 논란이 될 때마다 정부 측은 말했다. 우리가 체결한 수많은 투자협정이나 FTA에 ISD가 포함되어 있지만 단 한번도 소송을 당한 적이 없다고 말이다. 이제 이들이 발언하게 하자. 만에 하나 대한민국 제1호 ISD소송에서 패소하면 어떻게 할 건지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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