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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준 | 한국지방발전연구원 이사장


 

19대 총선을 전후해 터진 통합진보당 사태는 경기동부연합이라는 특정 정파는 물론 통진당과 민주당, 나아가 진보진영 전체를 커다란 위기로 몰아넣었다. 현재는 통진당 스스로 관련자들에게 의원직 사퇴를 요구하고 출당조치에 착수한데 이어 거대 여야 정당들이 관련 의원들에 대한 제명조치를 검토하고 있다. 그런데 과연 이러한 출당, 의원직 사퇴나 제명 그리고 검찰의 소추로 통진당이 정상화되고 야당과 진보진영 전체가 제자리를 되찾아 한국정치가 건전하게 발전해 나갈 수 있을까? 


 우선, 통진당 사태의 본질인 불법적 당 운영과 공직선거에서의 부정행위에 대해서는 ‘종북성’이라는 기준이 아닌 ‘민주적 기본질서의 위반’이라는 기준이 적용되어야 한다. 이러한 범죄적 행위에 대하여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실 규명이며, 이는 수사권을 가진 행정부의 책임인 만큼 정부의 수사를 예의주시하는 것이 순리일 것이다. 



경향신문DB



그런데 현재 많은 이들은 통진당 사태의 본질을 ‘종북성’이라는 단어에서 찾고 있다. 따라서 이 ‘종북성’이라는 단어부터 잘 따져 볼 필요가 있다. 문자의 뜻은 “북한을 따른다”는 것인데, 그것이 북한의 사상과 체제를 선호한다는 것인지 아니면 북한 정부의 지령을 따라서 행동한다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 만일 후자의 경우라면, 그것은 단순히 종북성이라는 말로 얼버무릴 성질의 것이 아니다. 이는 대한민국에 대한 반역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자의 경우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무엇보다 민주국가에서 개인은 사상과 신념의 자유를 가지며, 모든 사상과 신념은 건전한 시민적 공론장에서 치열하게 논의되고 국민적 선택을 받아야 한다. 따라서, 북한의 사상과 체제에 대한 선호를 무조건 비난하기보다는 먼저 우리의 민주적 기본 질서 속에서 ‘사상의 자유를 부인하는 사상’까지 수용할 것인지를 스스로 물어야 할 것이다. 만약 그러한 사상까지도 수용하겠다면 그러한 사상을 대변하는 세력이 국정운영 즉 국가권력의 행사에 참여하는 것을 허용할 것인지도 생각해봐야 한다. 사상의 자유를 부인하는 사상이 국가의 공권력 즉 강제력에 참여하여, 다른 사람이 가진 사상의 자유를 부정하고 제약하는 것을 허용할 것인지, 만약 그렇다면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지.


여기서 한 가지 조심해야 할 것은, 북한모델은 말할 나위도 없이 레닌주의도 반대하는 유럽식 민주사회주의와 심지어 사회민주주의까지 ‘종북성’이라는 단어로 싸잡아 비난하는 것이다. 의회주의를 존중하는 흐름까지 종북으로 매도하는 것은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으로서 문제의 본질을 흐리게 할 뿐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통진당 사태는 일차적으로 진보진영 스스로에 책임이 있다. 지난날 민주화 투쟁과정에서 복원된 급진적이고 극단적인 사상을 진작에 정화하여 걸러내지 못한 책임이다. 소련과 동구 공산권의 몰락이라는 첫번째 기회를 맞아 대부분이 이른바 전향을 하였지만, 극소수로 남은 과거의 동료에 대한 연민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이들 잔존세력의 치명적인 문제점을 애써 눈감아 왔기 때문에 오늘 진보진영 전체의 위기를 자초한 것이다. 진보진영은 이번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이제는 나라 전체를 책임질 수 있는 성숙한 자세를 보여줘야 한다. 자신만이 진리와 선을 독점하고 역사의 흐름을 선도할 수 있다는 의식을 내려놓아야 하며, 일부 극단적인 세력에 대해서는 과거 민주화의 동지였다는 점만을 의식하여 비호할 것이 아니라 단호하게 꾸짖고 확고하게 선을 긋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이것이 야권연대 등의 일회적 대선전략보다 훨씬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이다. 바쁠수록 돌아가라는 말을 상기해 주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것이 진보진영이 살고 대한민국이 발전할 수 있는 길이다. 


보수진영 역시 금도를 발휘해야 한다. 민주적 기본 질서를 위반한 행위에 대한 정부의 사실 규명과 더불어 진보진영의 자정 노력을 조용히 지켜보는 양식을 발휘하는 것이 오히려 국민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성숙하고 당당한 자세라는 점을 새삼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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