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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정부·여당을 선두로 보수적 자유주의 세력이 복지국가 건설이라는 시대적 대세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정부재정의 부족을 이유로 무상급식과 무상보육이라는 보편적 복지를 선별적 복지로 전환하자는 게 드러난 쟁점인데, 이는 장차 보육, 교육, 의료, 요양, 직업훈련, 평생교육 등 보편적 복지의 실질적 확충과 경제민주화의 실현을 포함한 역동적 복지국가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허용하지 않고, 시장만능주의가 지배하는 기존의 경제사회 질서를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이런 흐름은 국민의 기대와 시대정신에 반하는 역주행이다.

2010년 6월 지방선거 때부터 시대정신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보편적 복지와 복지국가에 대한 국민의 기대와 열망은 그해 10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보편적 복지가 당헌에 명시되는 것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당시 박근혜 의원이 국회 공청회를 통해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를 주창함으로써 여야 간에 복지 경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2011년에는 보편적 급식을 거부하던 오세훈 서울시장이 낙마하고, 박원순 후보가 당선됨으로써 보편적 복지와 복지국가는 우리시대의 큰 흐름으로 자리를 잡았다. 급기야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는 여야 정당 모두 복지국가를 공약했다. 이는 우리 국민이 더 나은 삶을 원했기 때문이다.

우리 국민은 행복하지 않다. 자살률은 인구 10만명당 30명으로 OECD 평균의 3배다. 합계출산율은 1.19명으로 꼴찌다. 강력 범죄율도 급격히 늘었다. 이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일어난 나쁜 변화들이다. 우리의 삶이 이렇게 불안하고 불행해진 것은 경제와 노동시장의 양극화 때문이다. 선별적 복지 중심의 부실한 복지체제가 사회안전망 역할을 해내지 못한 것도 한몫했다. 불평등이 문제다. 상대 빈곤율은 15%로 유럽 복지국가의 2배나 되고, 노인의 상대 빈곤율은 49%로 OECD 평균 13%를 압도한다. 우리나라는 소득상위 10%가 전체 소득의 45%를 점유해서 미국의 48%에 이어 2위다.

행복하지 않은 것은 1인당 국민소득 2만7000달러의 복지후진국이기 때문이다. ‘GDP 대비 사회복지지출’ 비중은 9%로 OECD 평균 21%나 선진복지국가의 30%에 비하면 형편없다. 더 큰 문제는 복지후진국은 일정 단계 이후론 경제성장이 어렵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지금 우리나라는 저성장의 덫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저금리의 통화정책과 확장 기조의 재정정책으로 대응하고 있지만 실패했던 일본의 전철을 밟을 것으로 전망된다. 양극화 경제와 선별적 복지의 구조적 한계로 인해 우리나라는 경제와 복지가 통합된 역동적 발전이 가로막히고 있다.

서적 <복지국가를 만든 사람들> (출처 : 경향DB)


이런 이유로 시장만능주의 양극화 체제에서 보편주의 역동적 복지국가로의 패러다임 전환이 요구되었고,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여야 선거공약의 전면에 등장했던 것이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처음부터 복지국가 공약을 폐기했고 시장만능주의를 강화했다. 게다가 최근 정부·여당을 필두로 보수적 자유주의 세력은 정부재정의 부족을 이유로 이명박 정부 말기에 정치사회적 합의로 시작되었던 보편적 급식과 보육마저 선별적 방식으로 전환하자며 복지국가의 길을 공격하고 나섰다. 우리나라는 일반정부 지출규모가 GDP의 31%로 OECD 평균인 42%에 크게 못 미친다. 그러므로 복지 축소가 아니라 누진적 증세가 정답이다.

그러나 정부·여당은 ‘증세 없는 복지’ 주장만 반복하며 “한국형 복지국가” 공약을 파기했고, 급기야 재정 부족을 이유로 2010년 이래 시대정신으로 자리 잡은 복지국가를 거부하고 나섰다. 이렇게 된 데는 무기력하고 무능한 제1야당의 책임도 크다. 결국 “깨어 있는 시민”이 나서야 한다. 시장만능주의가 초래한 양극화와 민생불안을 넘어 역동적 복지국가의 새 시대를 여는 것은 ‘복지국가의 기치’를 중심으로 우리 국민의 기대와 열망을 얼마나 잘 결집하는가에 달려 있다. 복지국가가 우리의 희망이다.


이상이 |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 대표·제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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