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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정부가 자국인들의 한국 관광을 금지하는 등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에 대한 보복을 노골화하면서 큰 갈등이 발생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과 중국 간에 적용될 수 있는 국제적 규범은 무엇일까?

먼저 유엔총회 결의 제2625호로 채택된 ‘국가 간 우호관계 및 협력에 관한 국제법원칙 선언’(유엔우호관계선언)을 생각하게 된다. 이 선언은 “어떠한 국가도 다른 국가의 주권적 권리행사를 굴복시키거나 그 국가로부터 각종 이익을 얻기 위하여 그 국가를 강제하기 위한 경제적, 정치적 또는 기타의 조치를 사용하거나 사용하는 것을 장려하여서는 안된다”고 규정했다. 즉 한 국가가 다른 국가의 주권적 권리행사를 굴복시키거나 다른 이익을 얻기 위해 경제적 보복조치 등을 통하여 그 국가를 강제하는 것은 유엔 결의에 위반되는 행위이다. 유엔우호관계선언은 1970년 유엔총회에서 반대하는 국가 없이 만장일치로 채택됐다. 나아가 국제사법재판소(ICJ)와 국제법 전문가들은 유엔우호관계선언을 국제관습법으로 보기 때문에 이 선언에 위반되는 행위는 국제법을 위반하는 행위라고 볼 수 있다.

한국 정부가 사드 배치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많은 논의가 있었고 찬반이 치열하게 대립했다. 사드 배치 결정이 앞으로 상황에 따라 변경될 여지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유의할 점은 사드 배치 결정이나 그 변경은 우리나라의 주권적 권리행사의 일환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주권적 권리행사를 중국이 경제적 보복조치 등을 통하여 굴복시키려고 한다면 유엔우호관계선언을 위반하는 것이며, 나아가 국제법 위반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유엔우호관계선언은 경제적 보복조치를 국가가 직접 사용하는 경우뿐 아니라 보복조치를 민간에 장려하는 것도 금지하고 있다. 따라서 중국 정부가 직접 경제적 보복조치 등을 취하지 않더라도, 그것의 사용을 용인하고 장려한다면 유엔우호관계선언에 위반된다.

국제사회에서 국가 간에 경제적 보복 등을 통한 강제조치를 금지하는 것에 유엔우호관계선언만 있는 것이 아니다. 1967년 미주기구헌장 제20조도 국가들이 다른 국가의 주권적 의사를 강제하거나 각종 이익을 취하기 위한 경제적 또는 정치적 성격의 강제조치 사용을 금지했다. 1975년 유럽안보협력회의가 채택한 ‘헬싱키 최종의정서’ 제6원칙도 모든 참가국들이 다른 참가국의 고유한 주권적 권리 행사를 굴복시키기 위한 군사적·정치적·경제적 또는 다른 형태의 강제적 조치를 모든 상황에서 삼가야 한다고 선포했다. 유엔의 주요 사법기관인 국제사법재판소(ICJ)는 1986년 니카라과 사건 판결에서 국내문제불간섭의 원칙과 관련하여 경제적 보복조치가 국제법 위반이라는 점을 확인했다.

이를 종합하면 한 국가의 주권적 권리행사를 굴복시키거나, 독립성을 침해하는 목적을 가진 경제적·정치적 보복조치는 국제법 위반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중국 정부가 한국의 사드 배치 결정과 관련해 시행하거나 시행을 장려하는 현재의 경제적·정치적 보복조치 등은 국제법상 허용되지 않는 것이라고 판단된다.

중국 내 일각에서는 한국 내 사드 배치를 1962년 구소련이 쿠바에 공격용 미사일을 배치하면서 발생한 쿠바 미사일 위기와 유사하다며, 한국 내 사드에 대해 ‘외과수술식 타격’을 가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고 한다.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 미국 내 강경파는 외과수술식 타격을 주장했으나, 미국은 이것이 1907년의 ‘개전에 관한 협약’에 위반된다는 판단하에 실행하지 않았다. 이 협약은 제1조에서 협약의 당사국들이 적대행위를 개시하기 전에 선전포고를 하도록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이 쿠바에 있던 구소련의 미사일 기지에 대해 기습공격을 하는 것은 협약의 위반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미국은 공격 대신에 쿠바를 봉쇄하기로 했다. 이 봉쇄조치는 미주기구(OAS)로부터 만장일치의 승인을 받는 등 국제사회의 견고한 지지를 얻었다. 미국의 합법적 조치에 대한 국제사회의 견고한 지지가 구소련이 미사일과 폭격기를 쿠바에서 철수시키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것이다. 미국이 만약 쿠바 미사일 기지에 공격을 감행했다면 미국과 구소련 간에 핵전쟁이 발생해 인류가 멸망했을지도 모른다.

‘개전에 관한 협약’은 현재도 유효하고 중국도 협약의 당사국이다. 한국에 배치될 사드에 대한 중국의 군사적 공격은 개전에 관한 협약의 위반이 될 것이다. 쿠바 미사일 위기를 통해 배우는 교훈 중의 하나는 국제법에 기초한 국가 정책만이 국제사회의 지지를 얻을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 승리한다는 점이다. 한국과 중국이 가까운 이웃국가로서 국제법에 기초해 긴장을 해소하고 우호와 협력의 관계를 더욱 발전시켜 나갈 수 있기를 희망한다.

김영석 |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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