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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한 말이지만 아직 여자는 좀 멀었다고 봐요.” 가뜩이나 엽기적인 뉴스에 신경이 극도로 곤두서 있는데 택시 기사 아저씨의 말은 묘하게 흘러갔다. “하루 종일 손님들도 난리예요. 이게 말이 되는 나라꼴이냐고. 정신 나간 여자 둘이서 나라를 말아먹은 거지. 애도 낳아보고 시집살이도 해보고 그래야 뭘 해도 제대로 하지…. 아무튼 여자는 안돼.”

여자라서 나라를 말아먹다니. 무슨 말도 안되는 시답잖은 소린가 싶었지만 그냥 넘겼다. 소위 ‘역대급’ 국정농단 사건에 ‘멘붕’이 된 사람이 어디 이 아저씨 하나뿐이겠나.

마을버스 안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아들) 지만이었으면 이렇게 당하지 않았을 텐데 여자라서 얕잡아 보인 거다”라며 장광설을 늘어놓는 일단의 할머니들 이야기도 그러려니 하고 흘려들었다. 그런데 오랫동안 취재원으로 알고 지낸 50대 초반 지인의 얘기엔 현기증 비슷한 것이 밀려들었다. “앞으로 당분간 여자들이 기업이든 국가기관이든 조직의 장을 맡거나 나서기는 힘들 것 같아요.”

출처: 경향신문DB

정권 초기만 해도 여성 임원들을 키워야 한다며 법석을 떨고 인력풀을 만드는 데 신경을 쓰던 일반 기업들의 분위기는 이미 싹 달라졌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가 잇는 말에 순간적으로 귀를 의심했다. “실세가 최순실이 아니고 차라리 정윤회였다면 이만큼 황당하고 화가 나지는 않았을 거라는 거죠.”

나라를 위기에서 구해내자며 다같이 주머니를 털고 금을 내놓던 시절 이후, 이처럼 국론이 한데로 모아졌던 때는 없었다. 초유의 헌법유린과 국정농단 사태에 국민들의 분노가 들불처럼 일어났다. 이 분노의 바탕을 지탱하는 건 민주주의의 존엄성, 주권의 지엄함에 대한 자각 아니었던가. 그래서 이 분노의 결과 색깔은 누구에게서건 같은 줄 알았다. 그런데 곳곳에서 뚱딴지처럼 ‘성’의 문제가 끼어드는 건 도대체 무슨 경우인가.

여성혐오 논쟁을 벌이자는 것이 아니다. 지금은 무엇보다 본질과 핵심을 직시할 때다. 대한민국 대통령 박근혜는 위기에 처했고, 그 근본 원인은 자신에게 있다. 이것은 대통령 박근혜의 문제이고 위기이지 여성 대통령, 여성 리더십의 문제와 위기가 아니다.

‘대통령 박근혜’가 가능했던 것은 ‘박정희’의 딸이었기 때문이다. 박정희에 대한 향수는 정치인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만들었고, 그는 아버지의 후광으로 대통령이 됐다. 이 과정에서 그와 주변인들이 내세운 ‘여성’은 생물학적 부분만 차용한 가짜 여성성이었을 뿐이다. 우리 국민은 여성성의 가치를 실현시켜줄 여성 대통령을 뽑은 게 아니라 여전히 현실 정치를 지배하는 신격화된 독재자의 자식을 뽑았고, 그의 성별이 여성이었다. 그리고 그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지지자들이 품었던 것은 여성 리더십이 불어넣어줄 영감과 활력이 아니라, 그저 아버지 옆에서 보고 배운 게 있을 테니 잘하리라는 막연한 믿음이었다. 그의 곁에서 국정을 농단한 주역이 최순실이 아니라 정윤회였다면 과연 분노의 정도가 달라졌을까.

남성성과 여성성은 구별된다. 그 특질과 스타일이 다르고 장단점도 다르게 발현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권력을 사유화해서 파렴치한 범죄를 저지른 지도자와 ‘비선’은 무수히 많았지만 그들을 향해 남성의 리더십, 혹은 남성성이 문제라고 비판을 하지는 않는다.

며칠 전 지하철에서 “요사스러운 년 하나 때문에 우리 박정희 대통령이 하늘에서 피눈물을 흘리신다”며 술에 취해 소리치던 할아버지를 봤다. 한평생 가져온 믿음이 깨지는 현실을 맞닥뜨린 데서 온, 일종의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 아니었을까 싶다. 그들의 분노가 애꿎은 대상에게 튀지 않도록 살피고 보듬는 것도 우리 사회가 안은 과제다. 이 와중에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든 ‘부역자’들은 광화문에 박정희 동상을 세우겠단다. 그들의 양심은 어디까지 내려가야 바닥을 치게 되려나.

박경은 대중문화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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