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신혼부부를 두고 흔히 깨가 쏟아진다고 한다. 새롭게 출범한 정부 초기에는 통상 국민들이 높은 지지를 보내는데 이를 신혼부부에 빗대어 허니문 효과라 부른다. 새 정부 역시 이러한 허니문 시기를 겪고 있다. 더군다나 문재인 대통령의 파격적인 소통행보와 내각인선, 속도감 있는 업무지시 등으로 호감의 강도는 그 어느 역대 정권 때보다 높다.

문 대통령은 일자리위원회 설치를 시작으로, 국정역사교과서 폐지, 석탄화력발전소 셧다운, 4대강 정비사업 재조사 등을 업무지시로 하명했다. 국정운영의 속도뿐만 아니라 그 대상들이 그간 논란의 한가운데에 있었기에 문 대통령의 업무지시는 대체로 많은 국민들의 지지를 얻고 있다. 한편, 정부는 최악의 실업률 해소를 위해 일자리 관련 추가경정예산안 편성의 내달 임시국회처리도 추진하고 있다. 국가재정법의 추경요건에 해당하는지 관련 법조항의 해석을 둘러싼 논란이 전혀 없지는 않지만 현실적으로 여야 합의를 거친다면 통과될 것으로 보인다. 내각인선 청문회에서 다소 고전하고 있지만 어쨌든 기대 이상으로 새 정부가 순항 중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29일 청와대 여민1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 참석,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그런데 지금까지의 국정행보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돈 드는 일들이 없다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물론 일자리 추경이 대략 10조원 규모이기는 하나, 소요재원을 세계잉여금과 초과 세수를 통해 조달할 계획이라고 하니 그런 점에서 국민들의 지갑을 더 열 필요는 없다. 이처럼 추가적인 돈이 들지 않는 것들만 있다면야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많은 국가정책은 재정을 수반한다. 그런 까닭에 정책 실행에 있어 걸림돌은 늘 돈 문제다.

지난 대선기간 중 문 대통령은 공약을 이행하는 데 재임기간인 5년 동안 총 178조원이 필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 대선공약집에 따른다면 전체 필요재원 중 112조원(62.9%)을 재정지출 절감 등 재정개혁을 통해 조달하고, 나머지 금액 중 31조5000억원(17.7%)은 증세로 마련한다고 한다. 그런데 재정개혁이 생각만큼 잘 이뤄질지는 두고 볼 일이다. 만약 개혁이 당초 기대에 못 미친다면 그로 인한 부족분은 대부분 고스란히 국민 부담이 됨은 물론이다.

대선 당시 문재인 캠프는 증세와 관련해서 어떤 세목으로 누가 얼마를 부담할지를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것을 꺼렸다. 증세의 세세한 고해성사가 자칫 지지자들의 이탈을 부를 수 있어 이를 극도로 의식한 결과다. 하지만 이제 집권한 이상 그 속내를 정확히 밝힐 수밖에 없을 터다. 마침 인수위원회 격인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국정과제추진에 필요한 비용추산과 조달방안 마련을 위해 ‘재정계획수립 태스크포스’(TF)를 발족하기로 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세부적인 증세방안은 TF 발표를 들어봐야 알겠지만, 그간 문 대통령이 후보 시절 밝힌 증세 로드맵과 언론을 통해 흘러나온 당국자들의 여러 말들을 종합해보면, 당장 세 부담이 늘어날 주체는 대기업과 개인 중 고소득층이다. 법인세의 경우 명목세율을 올리지 않더라도 각종 비과세나 감면에 따른 대기업에 대한 조세지출을 줄여나간다면 최대 늘릴 수 있는 세수는 2조8000억원 남짓(2017년 한 해 기준)이 된다. 물론 조세지출의 긍정적인 경제적 효과를 무시하고 모두 폐지했을 때의 이야기다. 이렇게 가정하더라도 증세로 계획한 연평균 필요재원인 6조3000억원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나머지는 결국 개인 몫이 된다. 그렇다면 누가 얼마를 부담할 것인가. 정부와 국민, 계층 간 갈등이 우려되는 대목이다.

정부가 손보려는 고소득층 개인에 대한 조세지출 총액은 대략 8조2000억원인데, 이를 대기업 몫과 합하면 연 필요재원은 넉넉히 챙길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문제가 있다. 자녀세액공제나 교육비·의료비 세액공제와 같이 조세지출항목 중 이론 측면에서 비정상적인 재정지원으로 단정하기 어려운 것들이 다수 존재한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누구를 고소득층, 다시 말해 부자로 볼지 국가와 개인, 개인과 개인 간의 판단기준은 다를 수밖에 없다는 데 있다. 고소득자의 소득세 최고세율 인상 등 다른 복안도 마찬가지의 문제를 갖는다.

허니문 시기가 끝나면 부부들은 현실적인 문제들, 특히 돈 문제에 부딪히기 마련이다. 그 과정에서 생각의 차이로 갈등하고 반목한다. 새 정부와 국민도 마찬가지다.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정공법은 지난 정부와 같이 법이론을 참칭한 말장난이 아닌 국가현안을 해결할 올바른 정책을 마련해서 솔직하게 증세에 대한 국민들의 동의를 구하는 것이다. 물론 쉽지는 않다. 증세 문제의 어려운 실타래를 어떻게 풀 것인지가 허니문 이후 새 정부가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의 하나다.

김현동 | 배재대 교수·조세법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