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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XX년부터 시작된 내전으로 한국은 더 이상 안전한 나라가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쳤다. 경제는 엉망이 되었고 의료시스템도 붕괴하여 전염병도 돌았다. 하루는 정부군이 와서 사람을 끌고 갔고 하루는 반군이 나타나서 협조하지 않는 자를 죽였다. 도무지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고 판단한 많은 사람들이 나라를 떠났다. 대사관 업무가 마비되어 비자 발급이 어려웠기에 이들은 세계를 떠돌 수밖에 없었다. 그중 무사증 제도를 시행하고 있어서 한 달간 체류할 수 있는 어느 나라의 작은 섬으로 무작정 향한 이들도 있었다. 한국인들에게는 생소한 나라였지만 동계, 하계 올림픽과 월드컵을 모두 유치한 경제규모 세계 11위의 나라에서 목숨이 위태로운 자신들을 내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게다가 그 나라는 난민법도 있는 인권국가가 아닌가. 실낱같은 희망을 지닌 한국인 500명이 인구 5000만명의 어느 나라의 문을 두드리며 외쳤다. 살려달라고.

한국인들은 순진했다. 그 나라는 1994년부터 지금까지 난민 신청자 3만3000여명 중 4%만을 받아들인(세계 190개국 평균은 30%) ‘난민에게 인색한’ 대표적인 나라였다. 아니나 다를까 한국인이 난민 인정을 기다린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곳곳에서 기겁하는 소리가 등장했다. ‘한국인을 절대로 난민으로 받아들여서는 안된다’는 촛불시위가 곳곳에서 등장했고 인터넷에서는 한국인 500명을 난민 인정하면 자신들의 나라가 한순간에 ‘한국화’가 될 거라고 우려하는 글들로 넘쳐났다. 개고기 먹는 한국인들이 자신의 나라에서 무슨 짓을 할지 끔찍하다는 내용이 많았다. 개도 먹는 사람들이 나중에 고양이도 먹지 않겠냐는 걱정이 넘쳐났다. 한국인들은 답답했다. 모든 한국인이 그런 것도 아니고 요즈음은 개식용이 많이 줄었다고 하소연한들 난민의 말을 들어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 나라 사람들은 모이기만 하면 한국사회의 나쁜 모습을 알려주기 바빴다. 선행학습을 당연하게 여기는 한국인들이 공교육을 파괴할 것이고 부동산 투기에 환장한 그들이 노동의 성실함을 무시하는 풍토를 만들 것을 우려했다. 나이 한 살 차이도 구분하면서 사람 사이에 엄격한 상하관계를 구축하는 폐쇄적 한국인들이 이곳에서 적응할 수 있겠냐는 분석도 있었다. 심지어 ‘자국 국가대표 축구선수에게 계란을 던지는 무례한 사람들’을 받아줄 수 없다는 댓글이 최고 추천을 받을 정도였다.

난민 자격심사에 나라의 문화적 특성이 영향을 끼쳐서는 안되는 것이지만 그 나라의 지식인들조차 자신들의 해외유학 경험을 증언하며 ‘한국인들이 사실 좀 그렇지’라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언론은 한국인들이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걸 마치 대단한 뉴스인 양 다뤘고 월급이 170만원인 일자리를 거절한 걸 중요한 사건처럼 보도했다. 그 나라 사람들은 ‘난민 주제에’라는 말을 습관적으로 뱉었고 이와 비례하여 ‘한국인들은 진짜 난민이 아니다’라며 비난 수위는 점차 높아졌다. 난민은 노예가 아니지만, 난민에게도 의사결정권이 있지만 한국인이라면 진저리를 치는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뉴스에 등장한 난민수용을 반대하는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인종주의자가 아닙니다. 다만 안전을 원할 뿐입니다.”

부메랑이 되어 나중에 당해봐야 정신 차릴 거라는 순진한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난민수용을 반대하는 거야 자유다. 하지만 해괴망측한 논리를 표현의 자유랍시고 인정할 순 없다. 지금이 1978년이 아닌 2018년도라면 ‘아무 말 대잔치’를 해서는 안된다. 특정한 나라, 특정한 종교에 대한 혐오는 한국사회에서 성별, 세대별, 지역별, 직업별 차이 없이 드러난다. 이는 한국에서 난민지위를 인정받아 어디에서 누구를 만나든 인간답게 살아가는 것이 힘들다는 것을 뜻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차라리 한국으로 오지 않는 게 누군가에는 더 존엄한 선택일지도 모를 일이다.

<오찬호 | <하나도 괜찮지 않습니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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