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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 날이 더워지고, 그만큼 시골 마을 깨어나는 시간이 빨라진다. 날 밝는 대로 몸을 놀리기 시작한 어른들, 서너 시간 꼬박 일하고 돌아오는 시간이 보통 회사 출근 시간이다. 서울 살 때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이야말로 가장 하기 힘든 일이라고 여겼는데, 이제는 꼭 일찍 일어나야 하는 일이 있으면 자명종이 없어도 눈이 떠진다. 해가 뜨거워지고 나서 일을 할라 치면, 정말 괴로우니까. “등거리를 잡아 뜯는 햇볕” 아래에서 아, 이래서는 도저히 안 되겠다를 여름마다 몇 해 반복하고, 또 그 사이사이 어쩌다가 이른 새벽에 논밭에 나가 시원한 바람을 맞고 나면, 일찍 일어나는 것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놀라운 일을 겪게 되는 것이다.

강원도 화천군 '화천현장귀농학교'에 입학해 귀농교육을 받고 있는 예비농부들이 흙을 쌓아 올린 두둑에 골을 판 뒤 씨앗을 뿌리고 있다. 강한 햇살에 손과 팔이 까맣게 그을려 있다. 강윤중 기자

얼마 전 광주 귀농학교에서 서정홍 선생님 강연하시는 자리에 따라가게 되었다. 선생님 하시는 말씀이 나한테 쏙쏙 들어온다. 아, 저 말씀들이 한 해 한 해 지날 때마다 무릎을 치며 되새기는 말들이 되겠지. “저녁에 일찍 자야 돼요. 그러면 일찍 일어나고, 몸 좀 풀어주는 운동 하고. 그러고 나서 일 나가면 좋습니다.” 처음에는 나도 일찍 일어나야지 하면서도 밤에 늦게 잤다. 그래 가지고 일찍 일어나지나. 일찍 자라. 이 얘기를 몸이 알아듣기까지 꽤 걸렸다. “30분 넘게, 한 시간 두 시간 달라붙어서 무리해서 일하지 마세요. 몸 써서 일했던 사람들 아니잖아요? 평생 농사지은 사람들도 힘쓰는 일을 오래 붙들고 있지는 않아요. 처음에는 연장 잡고 힘쓰는 잔근육을 길러야 해요. 근육을 좀 길러야 일을 할 수 있어요.” 일을 몸에 익히려면 힘이 생겨야 하니까. 그런데, 농사 연장이라는 것이 단순하게 생긴 데다가, 쓰는 방법도 어렵지 않아 보여서인지 아무래도 처음에는 만만하게 생각한다. 그랬다가 그걸 쥐고 논밭에 앉으면, 나만 이렇게 힘든가 싶다. 많이들 그렇다. 한두 해 일을 해도 어떤 근육들은 단련되지 않고, 어떤 움직임들은 영영 익히기 어려운 것들도 있다. 사람마다 처음부터 잘하는 것도 있고, 몇 해를 해도 할 때마다 어려운 것이 있고. 근육이 길러지는 동안이면 일하는 요령도 생긴다.

이웃 일본은 연장이나 도구 만드는 것이라면 첫손에 드는 나라인데, 이 나라도 농사짓는 사람들이 점점 늙은 사람만 남고 있다. 농사꾼 기력이 달리니까 그걸 메워 줄 연장들이 제법 나온다. 기름이나 전기로 돌리는 동력 기계는 일본의 농사 기계를 어지간히 다 들여오지만, 사람 힘을 더는 수동식 연장은 그렇지가 않다. 이런 연장은 늙은 농사꾼뿐 아니라, 어려서 농사일이 몸에 배지 않은 도시 사람들에게도 아주 요긴하다. 그런 것이 팔아도 얼마 남지를 않아서인가 장에서 보기가 어렵다. 구하고 싶은 사람이 기다리다 못해 긁쟁이니 풀밀어니 하는 연장을 스스로 만들어서 알음으로 팔기도 한다. 적정기술이라는 이름으로 기술과 연장을 정리하는 사람들이 더 소개하려고는 하지만, 다른 나라에서 기성품이 나와 있는 것을 보고 있으면 안타깝다. 나도 허리힘이 좋지 않고, 몸이 뻣뻣하니 허리를 굽히지 않고 일할 수 있는 연장이 있으면 좋겠다 싶고, 씨 뿌리는 일을 가지런히 할 수 있게 돕는 연장이 있으면 좋겠다 싶고, 그러다가 몇 가지 연장을 해외 직구로 구입했다. 개중에 하나는 논 김매는 연장인데, 쓸 때마다 너무나 기특한 것이라 블로그에 올려서 몇 사람이라도 더 보게끔 했다. 비슷하게 생긴 밭에 난 풀을 매는 연장도 고된 일을 많이 거들어 준다.

작은 농사 연장들은 늙은 농사꾼, 처음 농사를 시작하려는 사람들이 많은 지금 시골에서 빛을 발한다. 이런 연장들이 꼼꼼하게 만들어져서, 몸에 부담 되는 농사일이 줄어들면 좋겠다. 큰 기계를 들이지 않고도 농사일을 시작할 수 있고, 몸이 너무 고되지 않으면 시골 사는 일에 대해서도 조금 달리 생각할 수 있겠지. 작년에 사 두고 아직 쓰지 못한 연장이 있다. 농사짓고, 책 펴내고 하는 일만도 잘하지 못하면서 자꾸 일을 벌여서 그랬다.

<전광진 | 상추쌈 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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