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토론토에서 자영업에 종사한 지 만 12년이 넘었다. 한국에서 첫 직장이었던 언론사 기자로 일을 한 것과 엇비슷한 시간이다. 직장인 시절 내 팔자가 이쪽 방면으로 풀려나갈 줄은 몰랐다. 하긴 내가 캐나다에서 살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새로운 직업, 그것도 외국에 살러와서 장사라는 것으로 밥벌이를 하다보니 새삼스럽게 떠오르는 일들이 여럿 있었다. 무엇보다 자영업에 대해 잘못 생각한 것이 참 많았다.

첫째는 장사를 하면 돈을 잘 벌 것이라는 선입견. 월급쟁이 시절, 때만 되면 통장에 돈이 ‘따박따박’ 들어오는 것을 보면서도 그런 생각을 했었다. 당시 자영업 종사자를 어쩌다 만나면 그들이 주로 밥값을 냈기 때문이다. 그들이 돈을 잘 벌어서 그런 줄로만 알았다. 많든 적든 주머니에 현금이 있어서 그랬다는 것은 내가 자영업자가 되고 나서야 알았다. 장사를 시작한 직후에는 하루 매상이 떨어지기라도 하면 ‘이러다 망하는 게 아닌가’ 싶어 밤잠을 설쳤다. 내성이 생기기는 했으나 장사가 안되는 날이면 요즘도 기분이 별로 안 좋다.

둘째는 시간. 내 가게를 열어 장사를 하면 시간이 많을 줄 알았다. 조직에 매인 몸이 아니니 내 마음대로 시간을 조정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그러나 나는 12년 넘게 저녁 없는 삶은 물론 아침까지 없는 삶을 살아왔다. 내가 조정할 수 있는 시간이래야 자투리 시간일 뿐이다. 그래도 나는 일요일과 공휴일에 쉴 수 있으니 사정이 나은 편이다. 옷 가게를 하면서 힘들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나는 서울의 우리가 살던 아파트 옆 작은 슈퍼마켓 주인아저씨를 생각한다. 그이는 새벽 2시까지 매일 문을 열고 있었다. 그때는 그것이 당연한 걸로만 알았지 얼마나 힘든 것인 줄은 몰랐다. 토론토에도 연중 크리스마스 하루만 쉬는 자영업자들이 허다하다.

셋째는 장사꾼의 거짓말이다. 세상에 3대 거짓말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장사꾼이 밑지고 판다’는 것이라고들 한다. 뭘 모르는 사람들이 지어낸 헛소리이다. 전에는 나도 그 말을 믿었었다. 막상 장사를 하고 보니 밑지고 팔 때도 있다. 옷이고 가방이고 원가로도 나가지 않으면 밑지고 팔아치울 수밖에 없다. 공간을 확보해야 돈 되는 것을 갖다 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팔리지도 않는 물건을 본전이라도 챙기겠다며 마냥 움켜쥐고 있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드물다.

장사꾼으로서 거짓말을 안 한다고 하면 그건 거짓말이다. 나도 때로 거짓말을 한다. 천연덕스럽게 입에 침도 안 바르고 하는 경우도 가끔은 있다. 이를테면 여자 손님이 옷을 입어보고 “어때?” 하고 물으면 무조건 “예쁘다”고 말한다. 내가 파는 물건은 모두 예뻐보이니 그것은 거짓말이 아닐 수도 있겠다.

이런 경우도 있다. 손님이 옷이 좀 작아서 주저하는 기색이 보이면 “그거 두세 번 입으면 늘어난다”고 말한다. 반대의 경우라면 “그거 한두 번 빨면 작아진다”고 말한다. 나도 놀랄 정도로 확신을 가지고 말한다. 무엇이 진실인지는 나도 잘 모른다. 물건을 뒤에서 가져오면서 이렇게 거짓말하는 경우도 있다. “이거 단골손님이 요청해서 하나 빼놓은 건데, 너한테 그냥 먼저 줄게.” 특별 대접을 받는다고 느끼면 손님은 기분좋게 믿어준다. 사실은 단골이 주문한 것이 아니라, 단골에게 권하면 살 것 같아서 따로 둔 물건이었다.

과거 월급쟁이 시절에는 장사가 쉽고 재미있어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막상 내가 이 업종에 종사하다 보니 그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참 많이도 보인다. 장사꾼들에게 장사 잘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좋은 건물주를 만나는 일이다. 토론토에서 갑질이 심한 건물주는 ‘애니멀’이라 불린다. 터무니없이 구는 건물주는 호랑이만큼이나 무섭다. 그런 건물주를 만나면 속절없이 무너지는 것이 요즘 장사꾼들이다. 건물주가 갑질을 하면 잠 못 이룬다는 것은 절대 거짓말이 아니다. 그것은 한국이고 캐나다고 똑같다.

<성우제 | 재캐나다 작가>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