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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수달을 본 적이 있다. 늦은 저녁 깜깜한 찻길, 마을 앞 시골길이었지만, 적지 않은 자동차가 환한 불을 켜고 달려들 듯 지나다니는 시간이었다. 어미 수달과 새끼 수달은 갈 길을 찾지 못하고, 차가 지나갈 때마다 놀라서 이리저리 뛰었다. 차 한 대가 천천히 속도를 줄였다. 그제서야 나도 수달을 제대로 보았다. 곧바로 차에서 내려서, 길 아래 큰 개천으로 수달을 내몰았다. 물소리가 들릴 만큼 내려가서야 수달이 물풀 사이로 사라졌다.

그때 개천에는 큰 공사를 벌인다고 물길을 돌려 놓고, 커다란 중장비 여러 대가 개천바닥을 뒤집어 놓았더 때였다. 조금만 더 내려가면 섬진강이니, 수달은 섬진강에서 물길을 따라 왔다가 공사판에서 길을 잃었을 것이다. 섬진강에 가면 모래밭을 따라 조금만 걸어도 수달 발자국을 본다. 강을 헤엄쳐 다니면서 온 사방을 휘젓고 다니니까 수달이 몇 마리만 있어도, 물가 곳곳에 수달 흔적이 남는다. 발자국을 보면, 그때 그 어린 수달이 잘 자랐을까 하는 생각이 난다.

수달 말고 다른 동물들이라면 여러 번 만났다. 논밭을 오가는 길에 고라니를 보는 것은 흔한 일이고, 족제비는 한동안 우리집 돌담을 꽤나 들락거렸다. 밭에 내려오는 멧돼지는 부디 가까이 오지 않았으면 싶은 것이고, 너구리도 몇 번 저녁에 어슬렁거리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작고 귀여운 것, 두더지와 땃쥐는 밭둑에서 보았고, 논에서는 멧밭쥐를 만난 적이 있다. 집쥐나 등줄쥐는 절대 가까이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데, 이런 쥐보다 훨씬 작은 땃쥐나 멧밭쥐는 내가 보기에는 햄스터보다 몇 배는 더 귀엽다. 우리나라 쥐 가운데 가장 작은 멧밭쥐는 벼 포기 사이에 둥지를 짓는데, 둥지도 자기만큼 귀엽게 지어서, 타작할 때마다 감탄하면서 보게 된다. 봄 저녁에 박쥐가 날아다니는 것도 자주 본다. 벌레를 잡느라 휘떡휘떡 날갯짓하면서 나는 것을 보면, 확실히 새하고는 날개가 다르구나 싶다. 

그런데 이런 시골에도 어린이집으로 이동 동물원이라는 것이 찾아온다. 아이들은 신기해하고, 재미있어 한다. 만지고, 주무르고, 쿡쿡 찔러 본다. 아이들이 즐거워한다는 이유로, 아이들한테 여러 가지 동물을 직접 만나게 해 줄 수 있다는 이유로, 전국에 이런 일을 하는 데가 서른 곳이 훨씬 넘는다고 한다. 이동 동물원이니, 출장 동물원이니, 찾아가는 동물원이라고 하면서 이런 프로그램을 운영한다고 자랑을 하는 어린이집이 전국 어디에나 많이 있다.

이동 동물원의 동물들은 자기 몸이 겨우 들어가는 철장에 실려, 출렁거리는 차를 타고 먼 길을 다닌다. 아기가 카시트를 싫어하는 것만큼, 거의 모든 동물들은 자동차 타기를 힘들어한다. 늘 차를 타고 일하러 다니는 동물들은 그렇다고 평소에 지내는 공간이 아늑하지도 않다. 동물들이 어떻게 살고 있을지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어린이대공원쯤 되는 동물원에도 가서 보면, 정형행동을 하는 동물이 여럿 있다. 누구든 금세 알아차릴 수 있을 만큼 상태가 좋지 않다. 하물며 이동 동물원은 말할 필요도 없다. 건강이 안 좋은 동물은 몸이 약하고, 쉽게 병에 걸린다. 털과 겉가죽에는 기생하는 벌레나 세균도 많아지기 쉽다. 자연스레 사람한테 병을 옮길 확률도 높아진다. 정형행동을 하는 동물이라면 자신의 본성과는 전혀 다른 갑작스러운 행동을 할 가능성도 높다. 아이들이 그런 동물을 만진다.

다행인 것은 앞으로 이런 식으로 이동 동물원을 운영하는 것을 막는 법안이 발의되었다는 것이다. 불행인 것은 그것이 여전히 국회에 묶여 있다는 것이고. 새로이 마련된 법은 동물원을 등록만 하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허가를 받아야 하는 것으로 바꾸고, 동물원이 아닌 곳에서 야생동물을 전시하는 것도 막는다. 우리는 점점 더 야생동물을 멀리하는 삶을 살고 있다. 그런데도 야생동물을 가까이하고 싶다면, 그들이 스스로 내보이는 만큼만을 찾아다녀야 할 것이다. 그게 어려우면 책이나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할 테고.

<전광진 | 상추쌈 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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