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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가 하는 기도문 중 주님의 기도에 나오는 대목입니다.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하늘을 바라보고 갈망하던 일들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동방박사의 먼 길을 가능케 했습니다. 수많은 예언자들이 하늘을 보며 기도했던, 수많은 선의의 사람들이 땅에 무릎을 꿇고 기도했던 내용입니다. 그렇게 하느님이 사람이 되기를, 하늘의 위대한 존재가 땅에 발을 딛기를 기도하며 지내는 시기입니다. 그런 성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늘의 일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성탄입니다. 땅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억울함이, 고통이, 절망이, 불평등이, 불의가 씻기듯 사라져 하늘의 맑음이 펼쳐지는 것이 성탄입니다. 이와 같은 마음으로 저는 하늘 감옥에 있는 홍기탁, 박준호 두 분이 땅에 발을 딛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부족하지만 기도의 마음으로 12월 18일 오늘부터 무기한 연대단식에 함께 하고자 합니다.

그들은 2015년에도 408일에 이르는 고공농성을 해야 했습니다. 고용과 노동조합, 단체협약을 승계하겠다는 모회사 스타플렉스 김세권 사장의 약속을 믿고 내려왔습니다. 그러나 고향 구미를 떠나 찾아간 자회사 파인텍은 강제수용소, 격리소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최저임금도 안되는 처우이기도 했답니다. 다시 약속을 지켜라고 2017년 11월 12일, 서울 목동 서울에너지공사 75m 공장 굴뚝에 오른 지 오늘로 402일째입니다. 그들이 다시 고통의 408일을 맞지 않고 이 땅 위로 내려오게 하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입니다. 마침 408일이 되는 날이 크리스마스 이브인 12월 24일이라는 아픈 말을 듣고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저 하늘 위의 마굿간 같은 곳에 있는 그들이 기적처럼 12월 24일 이 땅 위로 내려올 수 있게 대통령과 정부, 국회 등 모두가 함께 나서달라는 간절함이기도 합니다. 

파인텍 해고 노동자들이 노사합의 이행을 촉구하며 75m 높이의 굴뚝에서 고공농성을 벌인 지 일 년이 되었다. 해고노동자 홍기탁(왼쪽)·박준호씨가 12일 농성을 벌이고 있는 서울 목동 열병합발전소 굴뚝에서 손을 들어 보이고 있다. 정지윤 기자

이런 기도를 할 자격은 있을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차광호 지회장의 408일의 고공농성 때에는 멀리 구미의 일이어서 바라만 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차광호 지회장이 굴뚝에서 내려왔을 때 이제는 해결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가까운 목동에서 파인텍의 홍기탁 박준호 두 분이 75미터 굴뚝에 올라갔을 때, “또 올라갔구나! 곧 내려오겠지!”하며 먼 산 바라보듯 하였습니다. 굴뚝에서 울려 퍼지는 고통의 신음이 계속 되고 점점 커질 때에도 바쁘다는 핑계로, 누군가 함께 하겠지 하는 망설임으로 다가가지 못했던 것입니다. 한 달에 한 번 있는 미사 때마다, “왜 꼭 이 날은 일이 많지?”라며 미루고 또 미루어 왔습니다. 이런 제가 402일이 지난 지금에 와서야 회사의 관계자들을 비난하며 대화와 해결을 요청할 자격이 있는지 말입니다.

그래서 저의 단식은 참회입니다. 강도를 만난 이웃을 보고도 바쁘다고, 부정 탄다고 황급히 길을 돌아간 사제와 바리사이의 모습이 바로 저였음을 고백하는 참회입니다. 바쁜 길을 멈추고 환자의 상처를 돌보아 주고 여관까지 데려다 주며 돌아오는 길에 치료비를 지불하겠노라는 이방인 사마리아 사람의 뜨거운 인간애를 보고도 돌아오지 않았으며, 일 년 안에 해결하겠으니 기다려 달라는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을 비판하는 것으로 할 바를 다했다고 스스로를 위로했음에 대한 반성입니다.

이렇게 부족한 저의 참여라도 두 분의 강생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하늘의 하느님이 땅에 발을 디디신 것처럼 하늘의 두 분이 땅에 발을 디디시기를 특별한 대림의 기도로 올립니다. 이 기도를 통해서 하늘에서 해결되는 인간의 갈등이 아니라 인간의 문제는 너무나도 당연히 인간과의 관계에서, 서로를 애틋이 아끼는 인류애와 함께 살 수 밖에 없는 공동체의 방식으로 해결되는 세상이 오기를 빕니다.

<나승구 신부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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