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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일 | 우리땅걷기 대표·문화사학자
옛 선인들 중 이름이 있는 사람들은 대개 호(號)를 지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거처한 지역의 이름이나 자연의 이름으로 호를 지었다. 한명회는 그가 지은 압구정이라는 정자에서 호를 따왔고, 퇴계 이황은 그가 살던 토계에서 퇴계(退溪)를 따왔다. 율곡 이이는 파주시 파평면 율곡리 밤골 마을에서 그 호를 따서 율곡(栗谷)이라 지었으며, 서경덕은 서재가 있던 화담(花潭)에서 호를 따왔다. 허균은 그가 태어난 강릉시 사천면의 교산(蛟山)에서 따서 용이 못된 이무기라는 호를 지었다. 연암(燕巖) 박지원은 가난하게 살았던 황해도 금천현에 있는 연암협에서 따서 호를 지었으며 다산 정약용은 유배생활을 보낸 다산(茶山)을 호로 택했다.
(경향신문DB)
그러한 예를 오늘에도 찾을 수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자신이 태어난 고향 마을 이름인 후광리(後廣里)에서 ‘후광’을 따왔다. ‘후광(後廣)’의 뜻 때문이었는지 그는 후에야 널리 알려져 대통령에 오른 것인지도 모른다.
한편, 삶의 지표로 삼기 위해 호를 지은 이도 더러 있었다. 온몸을 독립운동에 바쳤던 김구 선생의 호 백범(白凡)은 일제에 대한 전면전을 선포하는 뜻이기도 했다. “나는 왜놈이 지어준 뭉우리돌대로 가리라 하고, 굳게 결심하고 그 표로 내 이름 김구(金龜)를 고쳐 김구(金九)라 하고, 당호 ‘연하(蓮下)’를 버리고 ‘백범(白凡)’이라고 하여 옥중 동지들께 알렸다. 이름자를 고친 것은 왜놈의 국적에서 이탈하는 뜻이요, ‘백범’이라 함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천하다는 백정(白丁)과 무식한 범부(凡夫)까지 전부가 적어도 나만한 애국심을 가진 사람이 되게 하자 하는 내 원을 표하는 것이니….”
선생은 자신을 한없이 낮추어 ‘백범(白凡)’이라 하였으며, 그 낮은 곳으로부터 조선 독립운동의 대오를 이끌어내고자 하는 큰 뜻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동학농민혁명의 지도자였던 김개남 역시 ‘남조선’을 열어젖히리라는 큰 뜻을 가지고 영주라는 이름을 ‘개남(開南)’으로 바꾼 뒤 동학농민혁명을 이끌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그가 산 이력보다 호가 너무 커서 남의 입에 오르내리기도 한다. 전 대통령 중 한 분은 ‘일해(日海)’라고 했다. 그 호에 걸맞게 큰일을 많이 벌이긴 했으나 그가 사는 방식을 보면 한없이 초라하게만 보인다.
아직 호를 지을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는 내게도 어떤 스님이 호를 지어 주겠다고 한 적이 있다. “처사님의 삶이 운수납자(雲水衲子)처럼 떠돌고 있으니, ‘백운(白雲)’이라 하면 어떻겠소.” 나는 정중하게 사양했다. “백운거사 이규보가 먼저 선점했는데, 내가 무슨 호를 짓겠습니까?” 이름 하나 건사하고 살기도 힘드는데, 무슨 사치로 호를 지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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