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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대권 | ‘야생초 편지’ 저자
계곡 건너편 숲속에 오가피밭이 하나 있다. 일손이 달려 오랫동안 관리를 하지 않았더니 꼴이 말이 아니었다. 칡과 가시덩굴에 휩싸여 겨우 숨만 쌔근쌔근 쉬고 있었다. 올해는 기필코 너를 놈들로부터 해방시켜 주리라 결심을 하고 시간 나는 대로 올라가서 낫질을 해댔다.
그런데 오가피밭을 찾아가는 길이 몹시 험난했다. 편한 길을 택하면 계곡 저쪽으로 한참을 돌아서 들어가야 한다. 시간과 노력을 절약하고자 계곡을 가로지르는 지름길을 하나 냈다. 가장 거리가 짧고 발 디디기 편한 코스를 택해 길을 내다보니 아주 오래전부터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다래나무 고목과 마주치게 되었다. 다래나무가 저 정도 굵기라면 수십년, 아니 어쩌면 100년도 더 묵었을지 모른다. 어찌어찌해서 굵은 본줄기가 얽혀 있는 곳은 피했는데 어른 팔뚝만 한 줄기 하나가 사람 가슴 높이에 걸쳐져 있었다. 거처를 소란스럽게 만든 것만도 송구한데 당연히 허리를 숙이고 지나다녔다. 그러다가 도시에서 갓 이주해 온 친구 하나가 일을 도와주겠다고 따라나섰다. 한 나절 열심히 일을 하고 돌아가는데, 이게 웬일? 길 가운데를 가로질러 뻗어있던 다래 덩굴이 싹둑 잘려나간 것이다.
저녁 식사를 하면서 누가 다래나무를 잘랐냐고 물으니 그 친구가 자신이 했다며 당당하게 말한다. 순간적으로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아무것도 모르고 한 짓이니 야단칠 수도 없었다. 정색을 하고 왜 길을 막고 있는 다래 덩굴을 그대로 두었는지 차분히 설명해 주었다. 사실을 말하자면 다래가 길을 막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다래의 거처를 침입해 훼손한 것이다. 만약 그것이 흔하디 흔한 청미래나 칡덩굴이었다면 잘했다고 칭찬해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도시에서 갓 온 그로서는 그저 길을 막고 있는 장애물로밖에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백두대간이 난개발로 파괴되는 가운데 송두리째 잘려나간 자병산 정상 (경향DB)
개발 만능의 시대에 인간들은 자연을 단지 지배와 이용의 대상으로만 보았다. 그들에게도 생존 본능과 자기가 태어난 자리에서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꿈에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 지금 인간이 누리고 있는 안락과 행복이 뭇 동식물의 고통과 희생을 밟고 성립된 것임을 알고 있는 이가 얼마나 될까? 어쩌다 그런 상상을 해 볼 수는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알게 되면 내가 누리고 있는 행복이 불편해진다. 상대는 내가 아무리 밟고 짓뭉개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 저쪽에서 제멋대로 나고 자라는 짐승과 풀과 나무 따위 아닌가? 나의 행복을 온전히 지키기 위해 아예 그런 쪽으로의 생각을 차단하거나 자기합리화를 한다. 모든 하등생물은 고등생물에게 봉사하기 위해 태어났으며, 후자가 전자를 지배하고 이용하는 것은 자연의 법칙이라고. 다윈의 적자생존 법칙이 이를 과학적으로 뒷받침해주니 더욱 안심이다. 그런데 여기에 다윈의 결정적인 실수가 숨어 있다. 분명 다윈은 ‘가장 적합한 자(fittest)’가 살아남는다고 했지만 이것을 강한 자가 살아남는다고 해석했고 후세의 사람들은 아무 의심 없이 이를 받아들였다. 그 결과 살아남기 위해 남이야 어떻게 되든 강자가 되려고 몸부림치는 사회가 되고 말았다. 약자일지라도 서로 협동을 통해 살아남을 수도 있고, 환경을 잘 이용(타협)해 살아남을 수도 있는데 말이다.
사실을 말하자면 경쟁보다 협동을 통해 살아남는 경우가 훨씬 많다. 강자라서 살아남은 게 아니라 살아남았기 때문에 강자다. 그런 점에서 인간은 결코 강자가 아니다. 오히려 가장 오래 살아남았고, 개체수도 가장 많은 박테리아야말로 진정한 강자다. 그런데도 인간은 마치 자신이 최고의 강자인 양 세상을 마구 짓밟고 있으니 참으로 딱한 노릇이다.
다음날 일을 나가는데 보니까 누군가 잘려나간 다래나무 끝에 페트병을 달아놓았다. 잘려진 면에서 수액이 뚝뚝 떨어지는 것을 보고 아까웠던 모양이다. 지금 며칠째 미안함과 고마움이 뒤섞인 묘한 심정으로 다래의 눈물을 마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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