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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월8일, 문화재청은 성북동의 작은 근대 한옥을 국가사적으로 지정했다. 독립운동가이자 시인, 스님으로 유명한 만해 한용운 선생이 1933년부터 1944년까지 11년을 머물렀던 ‘심우장’이다.

심우장은 한용운 선생이 조선총독부가 있는 곳으로 머리를 둘 수 없다며 북향으로 지었다는 이야기로 유명하다. 그러나 심우장의 진정한 의미는 제국주의와 침략주의에 대한 비타협의 공간이라는 점이다. 1930년대 중반 이후 제국주의와 타협한 최남선, 최린 등 많은 이가 선생을 회유하기 위해 심우장을 찾아왔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그러나 만해 선생은 서대문형무소에서 갖은 고초를 겪다가 옥중 순국한 김동삼의 시신은 일제의 서슬에도 굴하지 않고 수습해 와 심우장에서 장례를 치렀다. 이처럼 심우장은 자유와 평화의 공간이기도 하다.

우리는 제국주의, 침략주의에 맞선 만해 한용운을 기억하지만 선생이 그것과 싸운 이유는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함이었다. 한용운 선생은 3·1운동으로 옥중에 있던 1919년 7월 <조선독립의 서>를 통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참된 자유는 반드시 평화를 동반하고 참된 평화는 반드시 자유를 함께한다. 실로 자유와 평화는 전 인류의 요구라 할 것이다.” 그를 독립운동가로만 기억해서는 안 되는 부분이다.

만해 선생은 그토록 염원하던 광복을 1년여 앞둔 1944년 6월29일 심우장에서 눈을 감았다. 그러나 제국주의와 침략주의는 여전히 남아 있다. ‘근대 일본의 아시아 침략은 제국주의 시대였던 당시에는 어쩔 수 없었다’는 주장이 법원 판결문에 고스란히 담기는가 하면, 스포츠에 정치를 끌어들이는 행위를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음에도 도쿄올림픽위원회는 독도를 일본 영토로 표기하고 있다.

오늘은 만해 선생 서거 77주기가 되는 날이다. 선생이 눈 감던 날 성북동의 산들은 초록으로 빛나고 있었다. 지금의 심우장 역시 모든 생명이 자유와 해방을 누리며 공존하는 평화의 색, 초록으로 가득하다. 마치 평화의 날을 함께 만들어 가자는 선생의 유언과도 같다. 많은 시민들이 성북동의 심우장에 들러 선생의 말씀에 귀 기울여 보기를 바란다.

박수진 성북문화원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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