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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벌어진 쌍용차 노조 과잉진압 사건을 조사해온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가 지난 28일 6개월에 걸친 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당시 경찰 진압이 위법한 공권력 행사였음을 공식 인정했다. 파업 이후 9년. 지난 6월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 김주중 조합원까지 서른명의 해고자와 그 가족이 세상을 등지는 비극이 이어지고 난 뒤였다.

각종 대테러장비로 무장한 경찰특공대가 테러 현장이 아닌 노동자들의 쟁의 현장에 투입됐다. 더 나아가 경찰은 노사 자율 원칙에 의해 해결해야 할 노동쟁의 현장에서 쌍용차 사측과 노동자들을 함께 진압하는 ‘합동 작전’을 펼쳤다고 한다. 사측이 고용한 경비용역의 폭력에 눈을 감았던 경찰은 파업 농성에 참여한 노조원들을 ‘폭력집단’으로 부각시키기 위해 ‘댓글부대’까지 운영하며 여론전을 벌였다. 

쌍용자동차 희생자추모 및 해고자복직 범국민대책위가 28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가진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 쌍용차 진압 보고서 발표에 따른 입장 발표 기자회견에서 2009년 쌍용차 노조 진압 당시 조립공장 옥상 위에 있던 해고노동자 김선동씨가 발언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당시 자행된 국가폭력의 실체가 뒤늦게 드러나게 됐지만, 해고 노동자들 입장에서는 달라진 것이 없다. 여전히 일터로 돌아가지 못한 해고자가 119명에 이르고, 진압 과정에서 파손된 경찰 장비를 물어내라며 국가가 이들을 상대로 낸 16억7000만원 규모의 손해배상청구 소송 역시 ‘파업 이후의 삶’을 옥죄고 있다. 

해고자들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돕기 위해 시민들이 소액을 기부하는 ‘노란봉투 운동’이 이어졌지만, 국가의 손배·가압류 남용을 막아달라며 시민들이 입법청원한 이른바 ‘노란봉투법’은 여전히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진상조사위는 경찰이 손배소를 취하해야 한다고 권고했지만, 민갑룡 경찰청장은 여전히 고심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이 이미 1·2심에서 승소한 상황인 데다 경찰 내부의 반대 여론도 의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경찰의 공권력 행사가 위법했음이 확인된 마당에 계속 소송을 이어가는 것은 국가에 의한 또 다른 폭력이 될 수 있다.진상조사위는 “손배소 금액의 90%를 차지하는 헬기·기중기 파손비용을 노조원이 물어내야 한다고 인정한 1·2심에서 헬기를 동원한 진압이 위법했다는 사실은 반영되지 않았다”고 밝힌 바 있다. 조사위에 따르면 쌍용차 파업 진압은 이명박 정부 청와대가 최종 승인했다고 한다. 쌍용차 해고자들이 제기했다 대법원에서 결과가 뒤집혀 패소한 해고무효 소송은 양승태 대법원의 ‘재판거래’ 대상이었다는 정황도 드러난 상태다. 청와대와 경찰, 기업과 법원까지 공조한 지난 9년의 ‘벼랑 끝 해고자 내몰기’를 지금이라도 바로잡기 위해선 정부와 경찰의 결단이 필요하다.

<선명수 | 사회부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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